메밀국수와 이면수
메밀국수와 이면수
  • 김우영 <소설가>
  • 승인 2012.11.14 2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우영의 에세이-우리말 나들이
김우영 <소설가>

여름철 더위를 달래주는 음식중 냉면 다음으로 많이 찾는 것이 메밀국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식중에는 ‘모밀국수’라 적혀 있다. ‘모밀’이 ‘메밀’의 함경도 사투리이므로,‘ 모밀국수’는 ‘메밀국수’가 맞는 말이다.

메밀은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일본에 전해졌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조선시대 구황작물로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주로 국수와 묵으로 만들어 먹었으며 냉면 사리(‘사리’는 순 우리말)의 주 재료도 메밀이다. 초가을 강원도 봉평에 가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인 이효석 생가 앞쪽 산등성이에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을 바라보며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술을 맛볼 수 있다.

메밀은 영양가 높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속을 차게 하는 음식으로 냉한 기운을 없애기 위해 무즙을 넣어 먹는다.

현재 우리가 식당에서 작은 대나무발 등에 올려놓은 메밀 사리를 장국(소스)에 찍어 먹는 형태는 일본식이다. 소위 ‘소바’라 부르는 것이다.

‘소바’는 메밀을 뜻하는 일본말이며 지금은 ‘소바키리’, 즉 메밀국수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인다. 회(사시미)와 더불어 일본의 전통 음식이며,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메밀국수가 역수입된 셈이다.

옛날 궁중에서 고기, 해물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끓여 먹던 메밀국수 요리를 흉내낸 음식이 있다. ‘OO국시’ 등 ‘국시’가 들어간 상호가 있다. 이때 ‘국시’는 ‘국수’ 의 사투리이다. ‘메밀국수’를 완전히 사투리로 하면 ‘모밀국시’가 맞는 말이다.

스무살 문학청년 시절 청바지에 장발을 하고 통기타 하나 어깨에 둘러매고 시골집 부근의 산으로 강가로 다니다가 저녁때가 되면 친구들과 함께 마을 방죽가에 있는 주막에 들러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이때는 주머니가 궁색하던 시절이라서 주막집 선반에 오랫동안 걸쳐있던 값이 싼 노가리를 안주삼아 방망이로 툭-툭- 쳐 잘게 부순 다음 고추장에 찍어 먹곤 했다.

잘 마른 명태 새끼인 노가리는 속된말로 거짓말이라는 뜻을 갖기도 한다. 명태의 출생설화는 이렇다. 옛날 함경도 명천에 ‘태’씨 라는 어부가 살았는데 물고기를 잘 잡았다. 담백하며 쫄깃한 물고기 이름을 몰라 사람들은 그 후 명천의 지명인 ‘명’ 자와 ‘태’ 씨 라는 어부의 성을 따 ‘명태’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명태는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막 잡아 신선한 것은 생태, 얼린 것은 동태, 딱딱하게 말린 것은 북어, 강원도 덕장에서 추운 겨울에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말려 살이 포동포동하고 노랗게 된 것은 황태라고 한다. 알로 젓갈을 담으면 명란젓, 내장으로 젓갈을 담으면 청란젓이다.

또 명태와 사촌지간인 ‘이면수’ 는 등이 암갈색이고 배는 황백색이며 몇 줄의 검은 세로띠가 있는 물고기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이면수라고 알고 하지만 실제의 정확한 명칭은 ‘임연수어’ 이다. 조선 정조 때 서유구가 지은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임연수(林延壽)라는 사람이 이 고기를 잘 낚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 ‘임연수어’ 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