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바보
진정한 바보
  • 김혜식(수필가)
  • 승인 2012.11.1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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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의 가요따라 세태따라
김혜식(수필가)

학창 시절 이태준 소설가의 소설 「달밤」을 읽고 작중 인물인 황수건에 대한 작가의 인물 조형성이 뛰어난 것에 반했었다. 하여 소설가의 꿈을 키운 적 있었다. 소설 속 황수건은 세태의 변천에 적응 못하는 바보스럽고 지능이 낮은 인물로 묘사 된다.

이 소설에 매료된 것은 각박한 세상사에 부딪혀 아픔을 겪는 모습을 작중 화자인 ‘나’에 의해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한 내용이 너무나 감동적이다. 바보는 시대를 막론하고 남의 밥그릇 넘겨다보는 일엔 서투르다. 그런 일엔 엄두도 못 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밥그릇도 제대로 못 챙기기 일쑤이다.

또한 정상인들은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철저히 심신의 가리개를 준비하지만 바보인 황수건은 가면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자신을 남 앞에 완전히 노출시키는 일에 주저치 않고 있다. 오죽 반편이면 학교 급사자리도 남에게 빼앗기고 신문 배달원 보조 자리도 남에게 내 주었고 나중엔 자신의 아내마저 달아나게 했을까.

뜬금없이 이 자리에 소설이야기가 나온 것은 요즘처럼 이문 남는 일에만 혈안이 돼 있는 세태에 소설 속 황수건 같은 바보가 못내 그리워서이다. 다행히 가끔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바보들 이야기가 한줄기 소낙비처럼 메마른 마음 밭을 윤기 있게 해주고 있어 살맛난다. 어느 고령의 할머니께서 막대한 돈을 대학교에 기부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그것이며 우리 고장 출신 줄기 세포 연구 기업 설립자인 알 앤 엘 바이오 라정찬 박사의 시가 1000억에 해당하는 개인 재산 90%를 사회에 환원한 게 그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부귀영화, 혈육보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 했다. 이렇듯 자신을 버리고 남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에 큰돈을 사회의 손에 선뜻 쥐어 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바보 아닌가. 내 것 아까운 줄 모르고 남의 손에 덥석 막대한 자신의 재산을 넘겼잖은가.

요즘은 바보의 개념이 엉뚱한 곳으로 비약 됐다. 오로지 한 곳만 바라보는 사람을 바보라고 칭한단다.

아버지가 딸을 너무 사랑하면 딸 바보, 아내만 오로지 사랑하면 아내 바보 등등이 그것이다. 이로보아 사회에 정과 사랑을 기부한 할머니나 라정찬 박사도 오직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타인만 바라본 이 시대의 진정한 바보임엔 틀림없다.

바보는 사전적 의미를 밝히자면 머리가 둔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할머니나 라정찬 박사는 자신이 지닌 것에 연연하지 않고 전부를 두 손에서 미련 없이 놓아버린 진정한 바보였다. 그래 손톱만큼도 자신의 것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영악한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음 있다. 그러고 보니 노래에도 순정적으로 한 사람만 사랑한다는 뜻에서인지 바보라고 자처하는 노래가 있다. 윤수일의 노래 ‘아파트’ 중 노래 가사에 나오는 바보가 그것이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쓸쓸한 너의 아파트.’

이 노래엔 자신 곁을 떠난 연인에 대한 미련 때문에 바보가 됐다고 자조한다. 미련은 어찌 보면 탐욕의 그물이다. 돈도 명예도 이 그물에 걸리기만 하면 그래서 몹시 구린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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