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인쇄기술의 정수… 살아 숨쉬는 '천년의 지혜'
고려 인쇄기술의 정수… 살아 숨쉬는 '천년의 지혜'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10.18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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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을 찾아…(3) 합천 해인사
충청타임즈와 청주교육지원청·청주문화원은 역사문화탐방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을 찾아-합천 해인사'를 지난 6일 진행했다. 산성초등학교 어린이 등 가족 40명이 함께 한 이번 탐방에서는 가야문화와 옛 인쇄문화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해인사에는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가야산 자락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웅장한 모습과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지만 해인사에는 부처임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 불법으로 새긴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새긴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목판대장경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 32호로 지정되었다.

마치 숙달된 한 사람이 모든 경판을 새긴 것처럼 판각 수준이 일정하고 아름다워 조선시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는 그 글씨를 보고 "이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마치 신선이 내려와서 쓴 것 같다"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삼장(三藏)을 집대성하고 내용이 정확하여 세계 각국에 전파돼 불교의 연구와 확산을 도왔으며, 아울러 세계의 인쇄술과 출판물에 끼친 영향 또한 지대하다.

1995년 팔만대장경판전(국보 제52호)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팔만대장경의 문화적 가치와 그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우리 후손들 모두가 길이 보전해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임을 확정하였다.

2007년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인사와 함께 가야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가야박물관을 탐방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최대 규모의 대가야시대 순장무덤인 지산리44호 무덤을 복원 재현한 '대가야왕릉전시관', 대가야를 중심으로 고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전시한 '대가야역사관', 악성 우륵과 가야금을 체계적으로 재조명한 '우륵박물관'을 통해 우수한 우리 문화를 엿볼수 있었다.<끝>

◈ "해인사 큰 규모 감탄… 대가야 유물 신기"

청주 산성초 4 정이수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잠이 깨어 합천 해인사에 갈 준비를 했다. 청주문화원 앞에서 버스를 타고 해인사로 떠났다. 2~3시간 후 나는 합천에 도착하여 가야산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해인사는 가야산 중턱에 있기 때문이다. 해인사에 가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대단했다.

입구에 들어가자 마자 어떤 스님이 북을 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북도 있고, 종도 있고, 목어, 운판등 4가지 악기가 있었는데 각 각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합천 해인사의 볼거리는 일주문, 봉황문, 국사단, 해탈문, 보경당, 범종각, 정중삼층석탑, 응진전, 명부전, 대적광전, 대비로전, 독성각, 학사대 전나무 등이 있다.

그래도 제일 유명한 것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판전이다. 팔만대장경은 하나의 높이가 4cm정도이고 모두 합하면 백두산 높이보다 높다고 한다.

또 팔만대장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새긴 것으로 국보 제32호이며, 장경판전은 대장경을 모신 건물로 국보 제52호이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까닭은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해인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신라 의상대사의 범손인 순응 이정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 10월 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되었다.

해인사는 다른 절 보다 규모가 큰 편이다. 왜냐하면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이 국립공원중 9번째이기 때문에 절도 클 수 밖에 없다. 또 신성시 생각하는 팔만대장경이 있기 때문에 작기보단 큰 것이 나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해인사를 다 둘러보고 가야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야박물관에는 대가야의 유물이 많았다. 가야는 철이 많고 여러 가야로 나눠져 있었다. 그게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가야 유물들 중 왕관은 유난히 다른 나라의 왕관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른 나라의 왕관은 무덤을 꾸밀 때 넣을 용이지만 가야의 왕관은 직접 쓰고 다녀 화려하지 않다고 말씀해 주셨다.

다음으로 우륵박물관을 갔다. 우륵은 가야금을 만든 사람으로 악기를 잘 다뤘다. 우륵박물관에서 여러 유품을 본 뒤 집으로 향했다. 다리는 아프고 여러 곳을 돌아다녀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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