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풍류·멋 한껏… 600년 정취 살아 숨쉰다
조선시대 풍류·멋 한껏… 600년 정취 살아 숨쉰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10.04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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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을 찾아… (2) 안동하회마을편

◇ 전통문화가 숨쉬는 살아있는 박물관, 하회마을

경북 안동하면 조선시대 양반이 생각난다. 오랫동안 선비 중심의 문화가 내려온 지방이다보니 양반이 그려지는 안동이다.

이곳에는 양반문화를 대표하는 하회마을이 있다.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인 안동하회마을은 기와집과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되어 있다.

한국의 전통마을로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한국의 멋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안동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인 하회(河回)는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또 마을 안쪽에는 하동고택, 남촌댁, 북촌댁, 양진당 등 고택이 즐비해 과거로 떠난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

하회마을의 또 다른 볼거리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있다.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들에 의해서 연희되어온 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열렸던 별신굿이라는 마을 굿의 일환으로 연행되었다.

별신굿이란 '특별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곧 별난 굿 또는 특별한 큰 굿을 의미한다.

탈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대내림을 하는데, 섣달 그믐날이나 정월 초이튿날 아침 산주(山主)와 광대들이 서낭당에 올라가서 당방울이 달린 내림대로 강신(降神)을 빌어서 대가 내리면, 당방울을 서낭대 꼭대기에 옮겨 달고, 서낭대를 앞세워 하산한다.

일행이 동사에 다다르면 서낭대와 내림대를 동사 처마에 기대어 세우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면 농악을 울리며 한바탕 놀이를 벌인다.

탈놀이를 시작하려면 각자의 탈을 쓰고 탈놀이 준비를 하며, 자기 차례가 되지 않은 광대들은 농악을 울린다.

놀이마당은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과 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의 8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등장인물로는 주지승,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이며 파계승에 대한 비웃음과 양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해학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 병산서원

서원은 옛날 조선시대 학교다. 병산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적 건축물로서, 류성룡 선생이 살아계실 때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 지은 건축물은 조선 선비의 소박한 일면을 볼 수 있으며, 서원 앞으로 흐르는 물길과 모래사장은 전국 서원 풍광 중 제일로 꼽힌다.

서원에는 류성룡 선생의 문집을 비롯해 각종 문헌 1000여종 3000여책이 소장되어 있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병산서당'을 다시 중건하고(1607), 사당 '존덕사'를 건립하면서(1610) 서원이 되었다.

그 후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년(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사라지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가 되었다.

서원 안 사당(존덕사)에 위패를 모셔서 선생의 학덕을 이어받고 추모하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삼신당 신목에 걸어놓은 소원 꼭 이뤄지길"


청주 산남고 1 박송이

가족들이 안동 하회마을로 역사탐방을 갔다. 하회마을은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 유네스크(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라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해설 선생님은 안동 하회마을이 한국의 대표적인 마을이며, 풍수지리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하셨다.

처음으로 답사 한 곳은 북촌댁이다. 이곳은 현재도 후손들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집안을 조용 조용 둘러보았다. 북촌댁은 양반가답게 문간채를 지나자 커다란 규모의 안채와 사랑채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의 외관과 문간채에 붙어 있는 행랑채를 둘러 보았다.

북촌댁 답사를 마치고 돌담 골목을 지나니 '삼신당 신목'이 나왔다. 마을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삼신당 신목은 나이가 600년 가까이 되는 큰 고목이었다. 삼신당 신목을 처음 봤을때는 무서운 생각도 있었지만 나무의 크기 때문에 신성한 느낌도 받았다. 나무 주위에는 새끼줄이 둘러져 있고 사람들이 흰 종이에 소원을 적어 꽁꽁 묶어 놓았다. 나도 종이에 소원을 적고 새끼줄에 꽁꽁 묶었다. 소원은 비밀이다. 꼭 이뤄지길 바란다.

'양진당'과 '충효당'도 보았다. 양진당은 하회마을 풍산 유씨의 대종택이고, 충효당은 임진왜란 때 큰 업적을 남긴 서애 류성룡 선생님이 거처하시던 곳으로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물들이다. 양진당과 충효당 두 건물도 후손들이 살고 있어 안채는 공개가 되지 않았고, 사랑채만이 공개되어 관람할 수 있었다. 옛날에는 '남성'과 '여성'의 공간으로 구분 되었지만 현재는 '주인'과 '관람객'의 공간 구분되어 있는거 같다.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마을을 답사하다 보면 조상이 물려주신 한옥을 대대로 이어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회마을 답사는 어린 시절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편한한 여행이었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때도 하회마을이 지금과 같이 아름답고 편안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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