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잔치, 히말라야 실종사고 '벌써 3년'
그들만의 잔치, 히말라야 실종사고 '벌써 3년'
  • 박연수 <직지원정대장>
  • 승인 2012.09.26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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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박연수 <직지원정대장>

'1377창조의 빛'이란 주제로 직지축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직지축제는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직지(直指)의 세계화와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있다.

직지원정대도 이에 발맞추기 위해 2006년 충북산악구조 대원들로 조직된 원정대를 결성했다. 직지원정대는 원정대 결성과 함께 파키스탄 카라코럼 히말라야 차라쿠사지역의 무명·미등 봉을 세계 초등했다.

그 무명봉을 직지봉(6,253m)으로 명명했다. 히말라야 등반 이래 처음으로 우리말로 된 봉우리 '직지봉'이 탄생하였다.

직지봉을 개척한 이들 중 중심이었던 민준영 박종성대원은 2009년 9월 25일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산군 히운출리 북벽에 직지루트(6,441m)를 개척하기위해 등반하던 중 실종됐다. 지금까지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주말(22일과 23일) 충북산악구조대원 및 민 대원이 함께하던 '타기 알파인클럽'회원, 박 대원이 함께하던 '한맥 산악회원' 등 수 많은 산악인들이 괴산군 조령산에서 추모등반을 가졌다. 그곳에서 모든 산악인들은 두 대원이 추구했던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등반을 하자고 결의했다.

산업주의 등반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등반의 가치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또한 직지원정대는 계속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영석 산악인 등 수많은 산악인들은 자기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히말라야에서 목숨까지 바친다.

이처럼 직지원정대는 청주의 자랑 직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최근 막을 내린 직지축제의 화려한 밤에 직지원정대는 없었다. '직지봉'만 있었다. 어떻게 직지봉이 탄생했고, 누가 명명했는지는 그 현장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히말라야 설산에 묻고 온 두명의 실종 대원들에게 더욱 미안하다. 직지원정대가 해냈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그들 속에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충북의 '토종 산악인'이다. 이들의 희생정신을 조금이나마 도민 가슴속에 살아있길 바랄뿐이다. 결국 직지 축제에서 실종된 대원들의 가치는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주말(제3주기 추모제)에 만난 박 대원의 어머니는 내 손을 꽉 잡고 "직지를 세계에 알리려 목숨까지 받쳤는데 묵념 하나조차 하지 않는 청주시가 야속하다. 본인들이 스스로 판단해 한 것이지만 직지원정대가 꿈꾸던 직지 세계화에 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서운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 3년이 지난 한국에서의 가을밤. 직지세계화를 위한 직지원정대 대원들의 투혼은 오래 남아있다. 그러나 정신 계승에 앞장서야 할 청주시는 관심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목숨을 바쳐 직지를 알리고자 했던 고(故)민준영·박종성대원은 청주시라는 공간에서는 사라지고 있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직지원정대의 도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본보기가 됐다. 상업주의 등반에 목맨 등반이 아닌, 도전정신을 깊게 본 것이다. 지난 25일은 두 대원이 실종 된지 꼭 3년째다. 지금도 히말라야 어딘가에서 묻혀 있을 두 명의 대원을 생각하면 가슴이 찌져지도록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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