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1 열망, 그 순간의 아름다움
단상(斷想) 1 열망, 그 순간의 아름다움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8.23 2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라오스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게 가난한 나라. 그러나 행복지수는 세계 3위 안에 드는 나라입니다. 그 행복한 나라 복판을 차지한 강물은 저대로 흐르고, 바람도 느슨하게 부는 마을에 아침이 옵니다.

그 때를 기다려 오렌지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공양을 나섭니다. 시줏물을 준비한 아낙네들이 무릎을 꿇고 승려들의 그릇에 찰밥을 조금씩 떼어 담아 바칩니다.

승려들은 하나씩 하나씩 자기 그릇에 밤톨만큼 담기는 밥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한참 만에 시주가 끝나면 아낙네들이 기도를 올립니다.

승려들은 아낙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서두르지도, 재촉하지도, 더 갈구하지도 않는 그 모습이 장엄합니다. 공양을 하면서 그 아낙이 무엇을 열망했는지는 모릅니다.

자식들이 안위, 내일의 양식, 흉년 없이 자라길 바라는 곡식, 새끼 밴 염소의 순산. 그 열망이 무엇이든지간에 열망하는 순간은 아름답습니다. 열망한다고 다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단지 열망하는 그 순간, 열망하는 마음의 소중함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공양과 열망의 행위들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열망한다고 해서 무엇이 이루어 질 수 있나, 열망하는 그것은 헛된 것은 아닐까, 부질없는 것은 아닐까, 나만 생각해서 내 몸의 보신을 위해서 열망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열망하는 것 하나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갖고 있는 하나를 잃는다면 나의 열망은 결코 바른 것이 아님을 깨우칩니다. 내가 갖겠다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열망하는 지고지순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나만 갖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싶다는 간절함.

메콩강을 건널 때였습니다. 허름한 불구의 걸인이 길에서 주워온 과일을 먹고 있습니다. 직업적인 걸인이 많은 나라라서 누구도 걸인에게 눈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옆에 앉았던 노점상 아낙이 지폐 몇 장과 팔다 남은 음식을 걸인에게 건네주면서 합장을 올립니다.

그 모습을 보고 와락, 부끄러워졌습니다. 직업적인 걸인이든, 거지가 된 직업인이든, 가난한 거지이든 그것은 이미 우리 손을 떠났습니다. 다만 아낙이 시주한 지폐가 걸인의 한 끼 식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떠나고 떠나서 굶주린 배에 한 끼의 식사가 채워 질 수 있다는 것. 그 숭고한 의식 앞에서 어느 것도 욕될 수 없다는 진실을 깨우칩니다.

행복지수를 가늠하는데 상위를 차지하는 나라들이 모두 최빈국이라는 것에서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내 배를 채우고자 열망하는 것이 아니라, 베품을 통해 내 영혼이 채워지고, 나눔으로 인해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아름다워진다는 진실, 그 아름다움이 우리가 사는 모든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확신.

이루고 못 이루고는 이미 우리 손을 떠났습니다. 열망하는 그 순간이 아름다울 뿐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