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고 오신 아버지
삶을 지고 오신 아버지
  • 이용길 <시인>
  • 승인 2012.08.2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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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용길 <시인>

새벽닭이 울면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나가셨다.

한참 떨어진 뒷동산 지게 끝이 멀어지면 달 기울어 겨울새가 아침을 준비하곤 했다.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산을 지고 내려오시는 아버지는 위대했다. 질빵으로 굳어진 어깨는 바위를 심어 놓았고 갈라지고 두툼한 두 손은 막 써버린 연장 같았다.

내가 청년이 되면서 아버지의 지게가 하던 일을 농기계로 대신하면서부터 아버지의 멍에는 이제 광 한 구석에 골동품이 되어 걸려 있다. 생활에 필요하거나 값나가는 물건도 아닌데 아직도 버리지 못한다.

어쩌다 한 번씩 지게를 바라 볼 때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어린 시절 추억이 새롭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아끼시던 지게를 사소한 이유로 망가뜨린 적이 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일 나가시는 것이 힘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더 신이 났기에 지게가 없으면 따라가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하고 들녘에 내 팽개쳐 버리고 아주 못쓰게 부숴버렸다.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는 오랫동안 사용하던 지게가 못쓰게 된 것을 알고 무척이나 상심 하시다가 울고 있는 나를 데리고 들녘으로 가서 부서진 잔해를 모아 불태웠다. 초여름이지만 밤바람은 싸늘했다. 아버지는 추워서 떨고 있는 나를 품에 안고서 지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막내야, 너는 아직 어려서 지게란 짐을 옮기는 도구로만 알고 있겠지, 물론 네 생각도 옳다. 하지만 너도 이다음에 어른이 되어 가정을 책임지는 나이가 되면 아버지의 지게는 짐뿐만이 아니라 가족의 소중한 삶을 함께 짊어지고 다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가 일하기 싫어서 부숴버린 지게는 그동안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우리가족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비록 낡은 지게였지만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지게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어느 날 관광지에서 팔고 있는 목공예를 보면서 어릴 때 부숴버린 지게가 생각났다. 실물보다 작게 만들었지만 투박한 모습이며 짚으로 엮은 멜빵이나, 등태며, 지게작대기까지 어쩌면 그렇게 잘 만들었는지. 지게를 거실에 놓아두고 바라보고 있으려니 새삼 지게위에는 짐뿐만이 아니라 가족에 소중한 삶을 함께 짊어지고 다녔다는 아버님 말씀이 생각났다.

지난 일을 회상하며 지게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치 한 쌍의 부부처럼 다정한 모습이 느껴진다. 혼자서는 서있을 수조차 없지만 둘이서 함께라면 어떠한 장애도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보인다.

살포시 고개 숙인 모습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이 나타나며, 서로를 단단하게 부축하는 모습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평생을 지켜 주겠다는 굳은 맹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이제야 철드는 막내아들의 어깨에도 보이지 않는 지게가 얹혀져 내 가족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소중한 삶을 짊어져야 할 의무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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