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미래 - 티벳 오체투지 12(終)
황량한 미래 - 티벳 오체투지 12(終)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8.1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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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목적지에 도착한 그들은 몇날 며칠 그들의 마음이 닿을 때까지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 투지를 합니다.

자기 몸 길이의 판자를 깔고 그 위에서 하는 오체 투지는 지금껏 지난 온 길에 비하면 가볍기 한이 없습니다. 천배, 만배, 이만배, 온 몸의 열기가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오체투지로 마음을 내려 좋습니다.

-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이 사원 앞에서. 내 삶은 이제 평온할 것이다.

험난한 풍랑을 거쳤기에 작은 파도는 아무 것도 아니리라. 야크 고기 한 조각을 가지고 네니내니 싸웠던 나는 왜 그랬을꼬.

짬파 한 그릇 때문에 왜 그리 아웅다웅 했던고. 예쁜 처자의 뒷태가 뭐가 그리 안타까워 잠 못 들었던고.

세속이여. 세속의 열정이여. 욕망이여, 한갖 재에 불과할 지니.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잔잔한 강물로 살게 하소서. 가질 수 없는 것은 버릴 줄 아는 현명함을 깨우치게 하소서. 아름다운 꽃을 보아도 가지려 하지 않고 두고 보아 누리게 하소서. 내 삶은 본시 아무 것도 없었으니 아무 것도 더 가지지 않게 하소서. 내 삶이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충분하게 하소서 -

몇날 며칠을 두고 보아도 눈물이 흐릅니다.

무엇을 염원하는가? 무엇을 염원하든 모두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리고 끝내 염원하는 마음조차도 없게 하소서. 오로지 무아무탈의 세상에 살게 하소서.

그들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소원했는가?

아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숭고한 마음을 알기에. 나는 다만 눈물만 흘릴 뿐 다른 것을 할 것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나도 오체 투지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결코 할 수 없을 거라는 답만 돌아 옵니다.

이제는 집으로 가야 할 시간입니다.

칭짱 열차 타고 북경으로 가는 도중입니다.

라싸에서 하룻밤 거리를 왔습니다.

저 멀리 오체 투지로 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 눈물이 납니다.

빠른 기차로 하룻밤을 왔는데 저들은 얼마만한 시간이 지나야 거기에 도착하게 될까요? 닿을 수 없는 거리. 닿을 수 없는 마음. 그 길을 이으려고 저렇게 하염없이 갑니다.

내게 묻습니다.

너는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느냐? 무엇을 갈망하느냐? 설혹 갈망하여 이루어진들 그 이룸으로 무엇을 하려느냐?

깊은 허무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제각각의 주어진 삶을 누리고 있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사는 삶. 그것이 이 천부(賤夫)의 오체투지라고 믿습니다.

사는 곳은 달라도 마음은 한결 같기를. 그리고 이루고 싶은 모든 마음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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