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옹기특화공원, 성공할 수 있다
도심 속 옹기특화공원, 성공할 수 있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07.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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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 취재1팀(부장)

오송 봉산리 옹기가마터가 개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제2오송생명과학단지를 조성하면서 개발 앞에 보존을 요구하고 있는 박재환 옹기장 가족의 외로운 싸움은 자칫 점촌마을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록 속에 갇힐 위기에 몰린 것이다.

점촌마을은 충북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박재환 옹기장의 삶터이자 작업장이다. 6대째 옹기쟁이로 살아온 선조들의 땅이기도 하다.

현재는 연로한 옹기장을 보필하며 아들 박성일 전수자가 옹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조차 미래가 불투명하다. 개발로 200년된 터전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부터 이곳에 대한 감정평가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땅이나 건물소유에 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터 자체만으로도 문화자원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문화산업시대를 지향하면서도 이 같은 자원을 살리지 못한다면 지역의 큰 손실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충북도는 노력하고 있다고 할 뿐 이렇다 할 해답을 내놓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치단체에서 큰 밑그림으로 그려내는 개발 구상이라 일부 지역에 대한 보존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계획을 변경해야 하는 보존 요구에 난색을 표명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보존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곳은 전통옹기가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충북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가난하고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전후로 옹기로 생계를 잇는 미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점촌마을에도 당시 10여가구 옹기굽는 곳이 있었지만 대부분 손을 뗐다고 한다. 돈도 되지 않을 뿐더러 천직은 자식들에게도 미안하다는 의식도 작용했던 것 같다. 우여곡절 속에도 박재환 옹기장은 70여년을 옹기를 만들며 점촌마을에서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역사성이 재조명되지 않고 개발로 사라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개발과 보존으로 갈등을 겪다 지금의 청주 명소로 자리잡은 두꺼비생태공원은 옹기가마터 보존 이유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생태공원은 2003년 환경단체에서 두꺼비살리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3년간 개발과 보존이 첨예하게 대치를 이루었던 갈등의 현장이었다. 당시 아파트 건립예정지였던 원흥이방죽은 3년의 지난한 갈등을 거치고서야 아파트가 세워질 자리에 지금의 두꺼비생태공원과 생태문화관이 만들어졌다.

이후 생태공원은 지역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는 장소로, 새로운 지역의 공동체문화에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 공원이 완성된 후 7년이 지난 지금, 두꺼비생태공원은 전국의 환경 명소로 자리잡고 국내외 인사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단순히 두꺼비 생명 보호로 시작한 이 운동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며 값진 대가로 생태환경자원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오송의 옹기가마터도 두꺼비생태공원처럼 옹기특화공원으로 조성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옹기의 내력과 200년 가업, 천주교 신자들의 이주 역사 등은 스토리텔링까지 겸비해 매력적인 장소임에 분명하다.

오송생명과학단지 내에 반드시 조성해야 할 공원을 약간의 설계변경을 통해 옹기공원과 오송의 역사자료관으로 만든다면 각박한 도시 속에 숨통을 트여주는 비상구가 될 수 있다. 보존에 무게를 두고 긍정적 검토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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