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감자
어머니 곁에 있을 땐
네 꺼 내 꺼 없이 지냈는데
어머니 가슴 가르고
떨어져 나와 보니 알겠다
씨감자 속에 너와 내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
쪽쪽 찢어져
땅에 묻혀보니 알겠다
내 몸에도 감자 여럿
앙앙거리며 달려드는 것
시집 '갈은동 구곡'(푸른나라)중에서
<김병기 시인의 감상노트>
감자가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꽃이 펴서 또 하나의 알을 낳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있겠는가. 그 알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우물 깊은 배꼽이 보인다. 배꼽 하나를 갖기 위하여 애쓴 흔적이다. 그래서 세 조각 네
조각 잘라서 땅에 뿌리면 새순이 올라와 화엄을 이룬다. 그 감자에서 어머니를 본다. 자식들에게 하나씩 배꼽을 달아주고 "엄마의 마음이다. 배꼽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당부가 담겨있는 서투른 어머니의 필체가 보인다. 가끔 마음 아픈 날이면, 어머니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 안에 감자 씨눈 하나 더 들여놓는 것. 어찌하여 사랑은 헤어진 뒤에 거룩한 슬픔으로 찾아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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