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끌어안고 恨 많은 삶 견뎌낸 母情
굴레 끌어안고 恨 많은 삶 견뎌낸 母情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06.25 2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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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떠오르는 6월 더 절절한 어머니
충북 수필가 45명 '그리운 어머니' 출간

자식·가족위한 위대한 희생 잔잔한 감동

충북에서 활동하는 45명의 수필가들이 함께 부른 사모곡 '그리운 어머니'가 출간돼 화제다. 45인의 작가와 45인의 어머니가 그려내는 풍경 속에는 힘겨운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들의 곡진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6·25를 겪으며 가난과 역경을 모성 하나로 버텨온 어머니의 삶은 전쟁의 포화 만큼이나 뜨겁게 가슴을 적신다.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어머니.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은 굴레를 끌어안고 한 많은 생을 살다간 이 땅의 어머니들을 '그리운 어머니'를 통해 다시금 되새겨 본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김홍은 수필가는 '살구꽃'에서 어머니의 기구한 삶을 그려내 먹먹한 그리움을 안겨준다. 피지도 못하고 꺾인 꽃처럼 전쟁 미망인으로 살아야 했던 젊은 어머니의 삶은 슬픔으로 점철되어 있다.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누군들 그립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만, 나만은 그렇지가 않다.

어머니는 50여년 전에 '문둥이촌'으로 팔려 가셨다는 풍문이 마을에 나 돌은 이후로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아버지는 6.25의 여름 피난길에 총을 맞아 세상을 뜨셨고, 다섯 살 된 여동생은 겨울 피난에 장질부사로 앓다가 애석하게도 눈을 감고 말았다.

새파랗게 젊은 어머니는 그해 봄, 유복자로 딸을 낳았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과부가된 어머니. 나는 산다는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어머니는 추운 겨울에 땔나무를 해 나르며 힘이 부칠 적마다 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다 못해, 일본으로 징용을 끌려갔다 돌아와 혼자 사는 이웃 마을 사람한데 중매를 서서 재혼을 하게 했다. 그 후 얼마간은 어머니는 힘든 일을 하지 않아 좋았다. 그러나 즐겁던 마음도 길지는 않았다. (중략)

일년을 함께 사는 동안 땅도 팔게 되었고, 어머니는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말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새 아버지는 아편 중독자이었다.

이후 나는 큰집에 살았다. 어머니가 떠난 그해 초겨울 어찌된 일인지 여동생은 이웃마을 사람의 등에 업혀 큰집으로 돌아왔으나 어머니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새 아버지가 어두운 밤에 어머니를 문둥이한테 몰래 팔아넘기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단다. 막연하게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다.

봄이 오면 더욱 어머니가 그리웠다. 어쩌다 호적초본을 떼는 날에는 오랜 날 가슴에다 파묻고 살아왔던 어머니를 행정적으로나마 그 이름을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행방불명이 되어 있지만 그때마다 어디선가 살아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도 사망신고를 낼 수도 없다."

-김홍은의 '살구꽃' 중에서

전쟁은 삶을 한 순간에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는다. 더구나 가부장제도 속에 살아온 한국 여인들은 남자의 삶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재가를 선택해야만 했던 당시의 시대상은 분명 아픈 과거다.

"열여덟에 출가하시어 첫 딸을 낳은 즉시 남편은 전선으로 끌려가고, 6.25 전쟁터에서 사망했다는 전사통보를 받고 의식을 잃으셨던 어머님. 오갈 데 없는 어머니는 어린 딸을 안고 친정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중략)

재가하신지 일 년만에 본처가 나타나 할 수 없이 한 평생을 동거인으로 사신 어머님이시다. 지긋지긋하게 가난한 시골농부의 동거인으로 사남매를 낳아 기르다 두번째 남편도 사망하여 고향을 등지고 객지 어느 장터 모퉁이에서 채소장사를 하시면서 사남매를 기르시느라 모진 고통을 겪으셨던 어머니셨다."

-이종준의 '어머니의 정 슬픔이여 저 하늘나라로' 중에서

전쟁 후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겪어야 했던 여인의 삶도 기구하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고영옥씨의 어머니는 남하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남쪽에 정착하면서 평생 고향을 등지고 전쟁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 인고의 세월은 세 딸을 데리고 삼팔선을 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지요.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를 만나 조금 안정되나 싶더니, 6.25가 터져 피난을 가서도 남편과 자식들을 지켜내는 일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지요. 옷가지를 곡식과 바꾸기 위해 포탄이 날아오는 거리를 헤메었고, 빈 집 곳간도 뒤져내던 어머니의 처절한 25시가 우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요. 휴전은 되었지만 아버지의 박봉으로 대가족을 이끌어가는 어머니의 삶은 여전히 전쟁이었죠."

-고영옥의 '편히 쉬소서 어머니' 중에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휴식은 사치에 불과했다. 짜투리 땅을 일구고,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바느질로 밤을 지새는 것은 예사였다.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식과 가족을 위한 사랑의 힘이었음을 6월의 파란 하늘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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