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스타 바자회를 다녀와서
마리스타 바자회를 다녀와서
  • 박상옥 <다정갤러리대표·시인>
  • 승인 2012.06.1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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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대표·시인>

그들은 남다르다. 오늘은 남다른 그들에게 축제의 날이다. 차가 마을 입구 좁은 길로 들어서자, 길을 지키고 섰던 무전기를 든 소년이 인사를 꾸벅하면서 무전기로 뭐라 한다. 들어가는 차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고, 차를 내보내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유니폼을 갖춰입지 않아설까. 어딘가 어설프다. 어떤 청년은 운동화 구두 부추 샌들 이런 저런 신발을 쌓아놓은 곁에서 손님들이 가리키면 짝을 채워 집어주기가 어리둥절하게 바쁘다. 또 다른 소년들이 액자를 나란히 정리해 놓은 곁에서 지나는 손님들을 쳐다보는 눈망울이 사슴같다. 또 기계에서 스무디를 뽑아주는 느리고 어설픈 동작에 음료가 쏟아질까 싶다. 하지만 집중하여 쳐다보는 눈길 아래서 스무디는 손님 손으로 무사히 건너간다. 6월 6일 바자회를 치르는 마리스타 청소년들이 일하는 모습이다. 마리스타는 지적장애 청소년들이 살고있는 생활보호시설이다. 마리스타의 집은 정신지체 2급, 3급의 장애등급을 받은 만7세에서 18세 사이의 남자 아동들이 생활하고 있다. 마리스타의 집은 정신지체를 지닌 아동들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훈련이 일반 가정에서처럼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따뜻하고 포근한 가정을 추구하는 특수시설이다.

아이가 남다른 엄마의 아픔이란 세상 그 어떤 아픔보다도 크다. 남들이 남다르게 본다는 시선에 적응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떤 엄마는 평생을 적응하지 못한다. 어떤 엄마는 적응하려고 애쓰다가 마음을 접고, 어딘가 자신의 짐을 덜어줄 곳을 찾아 아이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마리스타는 그런 엄마들이 자신의 아픈 십자가를 내려놓는 곳이다. 아이들이 마리스타에 들어오는 이유는 부모의 경제력이 안돼서 밥벌이를 해야하므로 또는 남달리 부족한 아이를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개중에는 의무감도 사랑도 저버리는 야박한 이기심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부모가 포기한 아이들을 사회적인 기구에서 일정기간 맡아서 기술과 일상의 기본을 익히게 하여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곳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번 바자회를 돌아보면서 남다른 그들이지만 부족함 때문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잔꽤 부리지 않고 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부족하다는 것은 일정한 사회적 기준을 세워놓고 그 잣대에 맞추고 싶어하는 우리들 내면의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어떤 새롭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거나 해결할 능력이 없긴 하지만 아이들과 선생님 그 주변엔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뛰어난 능력이 없어도 성실함만으로 삶을 나름의 평화로움으로 살아내는 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인데. 내게 겸손과 감사와 희생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가르쳐준 봉사모임을 다시 다녀야지 싶은 것이다.

어찌되었든 가장 위대한 엄마는 자신의 모성적 본능을 저버리지 않은 채 평생의 노고를 끌어안고 사는 엄마일텐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나아지면서 모성본능에 희생하는 엄마도 줄어드는 사회적 분위기다. 주변엔 친구들과 만나서 커피 마시고 쇼핑하는 시간이 중요해진 신세대 엄마들이 보인다. 남편과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아기들은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신세대 엄마들도 보인다. 이 땅 모든 생명체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존재한다면 부모 자식간은 희생의 요사채와 같은 것은 아닐까. 희생 없이는 어떤 생명체든 자라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어서 태아는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 그걸 추호도 의심치 않고 10개월을 안전하게 자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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