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제 좀먹는 부정부패
국가경제 좀먹는 부정부패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5.2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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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중국 송나라때 명판관 포청천(包靑天)은 드라마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송의 수도였던 카이펑(開封) 부윤으로 재직하며 민원인들로부터 직접 고소장을 접수해 조사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작두를 동원해 단죄함으로써 명성을 알렸다. 죄인에 대해서는 인정사정이 없어 염라대왕을 뜻하는 '포염'이라고 불렸다. 워낙 웃지를 않아 천년에 한번 맑아진다는 황하에 비교되며 철면대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황제의 사위인 부마가 조강지처를 버린 전력을 파헤친 후 황실의 압력을 뿌리치고 처단했다는 일화는 그가 남긴 에피소드의 압권으로 꼽힌다. 사후 1000년이 지났지만 중국에서 그의 인기는 식을줄 모른다. 영화와 드라마, 희곡 등에서 끊임없이 부활한다. 드라마에서 포청천을 연기한 배우를 찾아와 억울함을 청원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한다.

고향인 허페이(合肥)에 있는 포청천 무덤의 비석에는 그가 후손들에게 남긴 유언이 새겨져 있다. "관리된 자가 부패하면 내쫒고 고향에 들이지 마라. 죽어서도 들이지 마라. 조상묘지에는 결코 묻지마라". 그 다운 유언이다. 포청천이 1000년 넘게 서민들의 우상으로서 지위를 누리고 흠모를 받는 것은 그만큼 중국 사회의 부정부패가 이어져 그와 같은 인물의 출현을 필요로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청나라 때는 '3년 관직에 10만 은자를 쌓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당시 중국에 진출한 영국 상인들이 퇴직한 관리를 고용해 현직들을 매수했던 사례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전관예우나 퇴직 고위관료들이 관련기관에 취업해 뒤를 봐주는 행태의 전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들이 대형 비리가 터질 때마다 개혁과 쇄신을 외쳤지만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다. 오히려 최근에는 후진타오, 원자바오, 리장춘 등 중국 최고위층 자제들이 주요 국영기업 고위직에 오른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부정부패에서는 중국 못지않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지난해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한국은 10점 만점에 5.4점을 기록해 43위에 그쳤다. 전년도 39위에서 4계단이나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에서는 27위로 최하위권이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 아시아의 부탄, 중남미의 푸에르토리코 등 후진국보다 뒤처졌다. 특히 2008년부터 부패지수가 연속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퇴보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읽혀진다. 올해 권력층 비리를 포함해 각종 비리사건이 빈발했던 점을 감안할 때 내년에 이 지수는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사회 부패상이 국가경제를 좀먹는 원흉이라는 사실이 구체적 수치와 함께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청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만큼 개선되면 연간 경제성장률이 4%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부패가 공공투자와 관련한 정책결정 과정을 왜곡시키거나 민간투자 활력을 떨어뜨려 경제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부패지수가 1% 상승할 때마다 1인당 명목 GDP는 0.029% 상승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청렴도 수준이 OECD 평균까지 높아지려면 부패지수가 23% 개선돼야 한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0.65%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과 비리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박탈감과 배신감을 심어주는 개인범죄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를 훼손하는 공적 범죄로서 척결해야 한다는 명분이 확보된 셈이다.

포청천이 한치의 빈틈도 없는 사법권을 수행해 엄정한 사회 기강을 세울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무제한의 재량을 허용한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그에게 '선(先)처리 후(後)보고'를 허락했다. 포청천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는 일체 개입하지 않고 결과를 놓고 책임을 묻겠다는 식이었다. 사위가 작두를 받고 참수될 때까지도 간섭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보고를 받고 이를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추인한 황제의 의지가 없었다면 포청천의 신화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최고 권력자 주변에서 월권과 부정이 횡행하는 나라에서는 하부 권력이 알아서 길 수밖에 없고 이런 나라에서는 포청천이 등장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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