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겐 '헌신' 자신에겐 '가혹' 더 구부러진 부모님의 등
자식에겐 '헌신' 자신에겐 '가혹' 더 구부러진 부모님의 등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5.06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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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어버이날 … 거리의 어버이들은
젊어선 가족부양·조국 근대화에 몸 바치고

늙어서는 자식 부담 덜어주려 궂은 일 선뜻

굽을 대로 굽어 제대로 펴지지 않는 허리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어버이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모진 추위와 찌는 듯한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은 꼭두새벽부터 거리를 헤맨다. 젊어서는 가족부양과 함께 조국 근대화를 위해 온 몸을 불살랐던 이들 어버이들.

그들이 늙은 몸이 되어서도 다시 거리로 나와 폐지를 주으면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눈물겨운 자식사랑을 보여줌은 물론 소중한 자원이 재활용될 수 있는 정성을 우리 사회에 되돌려주고 있다.

경북에서 시집 온 이모 할머니(78)는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6일, 일요일임에도 쉬지 않고 어김없이 새벽길을 나섰다. 함께 살고 있는 자식들은 여전히 만류하고 있으나 파지를 주워 고물상에 넘기면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일을 아직 그만둘 생각이 없다.

최근들어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장성한 손자, 손녀들의 학비부담으로 아들 며느리 방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나오는 걸 자주 듣게 되면서 힘이 닿는 한 폐지 수집을 위한 새벽 고행길을 계속하겠다는 다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청주시가 지난 해 5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청주지역에서 폐지 수집에 나서는 노인은 상당구가 104명, 흥덕구가 234명 등 338명으로 조사됐다. 이 중에는 71세~80세까지의 노인이 19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심지어 90세를 넘긴 노인도 2명이나 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인 269명의 노인들은 차상위계층이나 일반 노인층이고 69명은 기초수급대상자. 기초수급대상이 되는 노인 가운데 폐지 수집을 위해 거리를 나서는 노인들의 경우 노인 일자리나 공공근로 참여 대상에서 배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일반 노인으로 분류돼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폐지 수집 노인들은 부양 의무자의 기준 초과로 인한 국민기초수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대부분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낡은 자전거나 버려진 유모차를 이용해 힘겹게 폐지 수집에 나서는 이들 어버이들을 가장 어렵게 하는 것은 목숨을 위협받는 교통사고의 위험.

안전장비를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어두운 새벽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 할머니같은 폐지 줍는 이 땅의 어버이들을 서럽게 하는 것은 젊은 운전자들의 질시와 모욕이다.

서럽기 그지없는 늙고 가난한 심신을 겨우 달래며 폐지를 줍는 새벽길에, 운전에 방해된다며 욕설까지 하는 젊은 운전자들을 만날 때면 그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다. 오늘 이 할머니는 평소보다 꽤 많은 폐지를 주웠다. 어제 어린이날인 탓에 치킨 상자며 피자 상자 등 배달시켜 먹은 음식물의 종이 상자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띠는 행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그득한 새벽 3시부터 8시까지 5시간동안 거리를 헤맨 고생 끝에 얻은 이 할머니의 수입은 1만 1450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동안 이렇게 모은 돈으로 손주들에게 용돈을 줄 수 있으니 이 할머니는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오늘은 어버이날을 앞두고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둘째와 막내 아들 가족, 그리고 딸들과 사위들도 찾아 올테니, 고물상을 나서는 이 할머니의 발길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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