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12>
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12>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5.0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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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갠지스 강가에서 또다른 안쓰러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작은 포대기를 감싸 안은 젊은 사내가 글썽글썽 강가에 나타납니다. 포대기에 싼 것은 죽은 아이입니다. 눈물이 가득한 젊은 아비는 한참을 웁니다. 강을 보면서, 강과 마주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만 떨구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더니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고 포대기에 묶습니다. 배를 빌려 강심까지 나가지만 물살이 거세니까 사공이 뭐라 지청구를 놓습니다. 젊은 아비가 돌멩이 묶인 포대기를 강물에 던집니다. 아기는 가라앉고 강은 그저 흐를 뿐입니다. 아이는 아직 죄를 짓기 전이라서 화장을 하지 않는답니다. 순결하게 살다 순결하게 죽은 영혼이 저렇게 고즈넉하게 강에 안깁니다.

화장되어지지 않는 육신이 또 하나 더 있습니다. 강 가운데 까마귀 몇 마리가 무언가를 타고 앉아 흘러 내려갑니다. 뗏목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두’ - 수도자로는 승려가 있고 신부가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사두(Saddu)라고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두인지, 태어난 뒤에 사두인지는 모릅니다. 감지 않은 머리카락은 거친 삼줄 같고 해골로 만든 바가지를 들고 넓적다리뼈를 갈아 만든 피리를 불고 다닙니다. 그것이 가진 전부입니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먼 길은 버스나 기차를 타고 고행과 수행을 떠납니다. 차비를 줄 돈도 없고, 받을 생각도 안합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무욕의 삶을 누립니다. 밀가루 빵인 짜파티 두어 장이면 한끼로 족하고 두 장이면 과하다 하는 삶입니다. 운수행각을 하다가 시주를 받으면 불을 피우고 죽을 끓여 먹습니다. 사두에의 보시는 내세를 위한 공덕쌓기입니다. 그런 공덕을 쌓을 기회를 얻게 해 주시니 사두와의 만남은 언제든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들은 춥거나 덥거나 가리지 않고 한적한 강가에서 밤을 지새며 명상에 듭니다. 별이 초롱초롱한 밤에 깨달음을 얻어 죽음을 관(觀)해서 얻는 것이 열반입니다. 그렇게 일생을 살다 어느 길바닥에서 생을 마감하니 그것을 일러 사두의 일생이라 합니다.

그렇게 일생을 표표하게 살다간 사두의 시체를 -사두의 시체는 화장시키지 않습니다. 살아서 업보를 다했으니 굳이 태울 것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저 마지막 옷가지조차 다 벗겨 맨몸으로 강물을 떠다닙니다. 그것을 까마귀가 뗏목삼아 타고 오면서 눈을 파먹고 코를 파먹고 입술을 쪼아댑니다. 살아서 얻어 보시를 받았으니 죽어서 구차한 시신을 보시하는 중입니다.

산다는 것의 의미를 떠올립니다. 어려서 죽으나, 부귀영화를 몸에 감고 죽으나, 허름한 짜파티 한 장으로 만족을 하고 죽으나 죽음은 모두 같습니다. 다만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뜨거운 갠지스 강에 하염없이 강물만 흐릅니다. ‘님아! 님아! 저 강을 건너지 마소’가 아니라 저 강을 어떻게 건널꼬를 고심하는 한 사내가 불길에 태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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