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광우병
촛불과 광우병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5.0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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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촛불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자기희생이다. 촛불에는 부패한 권력과 부당한 권력에 맞서서 세상에 진실을 알리기 위한 비폭력 평화 시위라는 상징과 침묵으로 세상을 향에 일갈(一喝)하는 역설의 미가 담겨 있다. 어두운 밤, 촛불은 기원을 상징한다. 장독대 위에 밝히는 촛불에는 자식의 무사안녕을 비는 어머니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떨어지는 촛농은 어머니의 눈물이 된다. 속으로 삭여 애를 태우는 소극적이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숨처럼 내뱉는 가는 숨에도 떨리지만 쉽게 꺼지지 않는 것은 두 손으로 감싸진 애절함이 크기에 바람 앞에 나선다.

촛불은 잠잠한 대중이다. 하나 둘 모여 숲이 되고, 파도가 되지만 낱낱을 놓고 보면 가냘픈 양심에 못내 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바람이 모인 것이다. 그러나 횃불은 다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톳불처럼 바싹 마른 숲을 태우고도 남는 힘을 지니고 있다. 촛불은 나를 태워 세상을 밝히지만, 횃불은 나도 태우고 너도 태우고 세상을 태워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 그것은 혁명이다. 이전에 것은 새것을 위해 태워 없애야 하는 낡은 잡동사니에 지나지 않는다. 새것을 예비하기 위한 거룩한 의식이다. 고샅을 돌아다니는 광기 어린 눈빛이 횃불이다. 촛불은 기다림이지만, 횃불은 위급함이다.

2008년도 광우병 사태 때 전국을 뒤덮었던 촛불이 하나 둘 불을 밝힌다. 미국에서 일어난 4번째 광우병 발생이 그 원인이다. 국민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중단과 검역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수입중단을 고시하고 철저한 조사를 미국에 요구하고 안전이 확인되면 그때 가서 예전처럼 수입해도 된다.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이집트 등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부분적으로 금지한다는 조처를 했음에도 우리나라는 정부가 나서 미국 입장을 대변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인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는 국민이 알지 못하는 양국 간에 이면 계약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국민이 화가 난 이유는 정부의 미적거리는 태도와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애초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데 있다. 국민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조사단을 꾸려 미국을 방문하는 태도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마저 건드리는 것이다. 미국과 문제가 생기면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작용했다. 떳떳하게 미국 정부에 명확하고 투명한 결과를 요구하는 자세를 갖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새누리당조차도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검역 중단을 주장하는 마당에 변명으로 일관하는 궁색함을 보이는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촛불에는 발화점이 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사람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했다. 신문광고에 대서특필한 약속마저 저버린 정부의 행동이 잠재된 분노를 촉발시킨 원인이 되었다. 공무원 중심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광우병이 발생한 농장도 방문하지 못하고 미국정부의 설명만 듣고 와 국민을 설득하려 한다면 촛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신과 원산지 표시제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쇠고기 소비량이 급격히 줄 것이고 이는 사료값도 건지지 못하는 한우 농가에 직격탄이 될 수도 있다.

'국민 건강권'과 '검역주권'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수입위생 조건을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과 검역을 중단할 수 있는 캐나다 수준으로 재협상하는 것도 늦었지만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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