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투티 추억
후투티 추억
  • 김성식 기자
  • 승인 2012.04.30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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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보 보 보, 보 보 보." 얼핏 들으면 벙어리뻐꾸기 울음소리 같은 낮고 부드러운 소리, 영락없는 후투티 소리였다. 반사적으로 멈춰 서서 다시 귀를 기울였다. "보 보 보, 보 보 보." 틀림없는 후투티였다. 얼마만인가. 시골 생활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언제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언제 모습을 봤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반가움에 실물을 확인하려고 어린애처럼 까치발을 한 채 살금살금 소리나는 쪽을 향했다. 평생 버리지 못하는 습관적인 행동에 씁쓸한 웃음이 지어질 즈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독특한 몸짓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머리엔 인디언 추장 같은 노란 머릿깃을 하고 날개에는 검은깃과 흰깃의 조화가 멋들어진 그야말로 아름다운 새 후투티가 종 특유의 파상 비행을 하며 날아올랐다.

후투티는 전 세계에 단 1종밖에 없는 파랑새목 후투티과의 새로 우리나라에서는 본래 여름철새였으나 최근 기후변화로 겨울에도 일부 개체가 남아 월동하기도 한다. 머릿깃이 인디언 추장의 머리장식을 닮았다 하여 '추장새' 혹은 오디가 익을 때쯤 뽕나무에 앉아 해충을 잡아먹는다 하여 '오디새'로도 불러왔다.

유럽에서는 후투티의 숫자가 갑자기 불어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여겨 왔다. 해서 아프가니스탄 내전 당시 그 원인을 아프가니스탄에서 후투티 숫자가 부쩍 늘어났던데서 찾는 이도 있었단다. 하지만 정작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후투티를 행운을 가져다 주는 길조로 여겨 새장에 키우기까지 한다.

기자도 어린 시절 이 새에 홀딱 반해 직접 키워본 적이 있다. 며칠 전 후투티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춰섰던 것도 어린 시절의 각별한 추억이 아직도 마음 속에 '인연의 끈'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었으리라.

기자가 후투티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진달래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바로 이맘때쯤의 어느 날 등굣길에서였다. 마을 뒷산으로 난 길을 따라 학교로 향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처음 보는 희한한 새가 나타나 따라오라는 듯 일정 거리를 두고 앞서서 날기 시작했다. 새에 대한 호기심이 유별나게 많았던 터라 금세 눈이 뒤집혔다. 잡힐 듯하다가도 다가서면 날아가고 다가서면 날아가고…. 애간장이 탈 정도로 혼을 빼놨다. 학교 가는 일은 아예 잊은 채 죽기살기로 그 새만 따라다녔다. 그러길 한 나절, 결국 그 새의 둥지를 찾아내고서야 끈질긴 '추격'을 멈췄다.

호기심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알은 몇 개나 낳고 얼마 동안 품으며 새끼는 얼마 만에 커서 둥지를 떠나는지, 먹이는 주로 무엇을 먹는지 등등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학교가 파하면 이내 둥지로 향했다. 그렇게 한 달 이상을 괴롭히고(?) 나서야 그 새의 몇몇 특성을 알아냈다. 크고 구부러진 주둥이로는 흙과 낙엽 속을 뒤져 주로 지렁이와 땅강아지를 잡아먹는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다.

지난 1970~80년대만 해도 4~6월 번식기가 되면 인가 근처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후투티가 지금은 '흔치 않은 새'로 분류되고 있다. 둥지를 틀던 나무 구멍과 인가의 돌담, 지붕(특히 슬레이트지붕이나 기와지붕)이 거의 사라지고 변한데다 농약 등에 의한 환경오염으로 개체수가 줄어들어 귀한 몸이 됐기 때문이다.

지렁이 잡기의 명수 또는 땅강아지 킬러란 별명처럼 기다란 주둥이에 지렁이나 땅강아지를 물고 파도치듯 곡선을 그리며 마을 어귀로 날아들던 친근한 새 후투티, 그 인상깊은 날갯짓이 특유의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 주변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오랜만에 모습을 보는 반가움 보다도 그들의 내일이 더 걱정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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