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11>
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11>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4.26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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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버려진 육신이 거의 다 타갑니다. 화부가 타다만 장작을 꺼냅니다. 나무가 귀한 이 나라에서 땔감으로 쓰기 위함입니다. 나머지는 삽으로 재를 퍼서 강으로 던집니다. 다 탄 것도 있고 덜 탄 것도 있습니다. 다 타든 덜 탔든 이제 이생에 그의 흔적은 없습니다. 재를 던지는 강 밑에서 사람 모가지가 하나 불쑥 올라옵니다. 그 머리 위로 다시 재가 던져집니다. 잿가루를 뒤집어 쓴 사내는 아랑곳않습니다.

태워버린 잿더미에서 금붙이를 찾는 불가촉 천민이 저렇게 물밑에서 망태기로 잿가루를 거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망자가 했을 금이빨, 은 귀고리. 녹은 쇠붙이를 찾기 위해 종일 저 물속에서 자맥질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다양하기만 하고 저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삶이 애련합니다.

내가 앉아있는 바로 앞에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옵니다. 눈동자가 붉습니다. 뜨거운 열기와 불을 먹어서 마치 야차와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내게는 관심도 두지 않고 화장터로 갑니다. 잿더미를 뒤적거리더니 뼈다귀 하나를 물고 옵니다. 그것을 내 앞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갉아 먹고 있습니다. 아작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개는 뼈다귀를 먹고 나는 뼈다귀를 빠는 개를 봅니다.

삶이 엄숙하고 죽음이 신성하다는 말은 이미 통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삶은 살아 있을 때만 소중합니다. 오늘 살아 있는 내가, 내일 죽으면 저렇게 잿더미로 버려지고 개가 깨물어 먹는 고깃덩이에 불과한 육신일 뿐입니다.

화장터 옆에는 상주의 머리를 깎아주는 노천 이발사가 있고 그 옆에 거울이 하나 놓였습니다. 열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한 이쁘장한 여자 아이가 더러운 강물에 몸을 씻고 나와 거울을 보며 꽃단장을 합니다. 화려한 사리를 입고 토닥토닥 분칠을 하고 있습니다. 예쁘기도 예쁩니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생각지도, 보지도 않습니다. 저게 삶입니다. 살아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주어진 내 일입니다. 죽어서의 일까지 지금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나도 언제가 저 위에 눕혀지면 태워지겠지요. 그리고 버려지겠지요.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아름다움을 누리고 배를 채우고 욕정을 뿌리면 족합니다. 살아서 누리지 못한다면 잿더미에 누웠을 때 얼마나 아쉬울까요.

사람들이 왜 이 곳을 성지라 부르는지 알겠습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보는 곳. 그럼으로 하여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염(念)을 내는 곳. 죽음이 별것 아니 듯 삶 또한 별것 아니니 애면글면 애태우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는 가르침.

그 가르침을 저 개가 가르치고 소가 말해주고 열 여섯 먹은 어린 소녀가 온 몸을 통해 내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를 가르치는 것들이 저렇게 많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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