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상군 배우기
맹상군 배우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4.16 2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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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찾아오는 사람 마다않기로는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재상 맹상군(孟嘗君)을 따를 사람이 없다. 그의 집에 눌러앉아 먹고자는 식객들이 늘 수백여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하니 인재를 구하는데 들인 비용도 엄청났을 것 같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다보니 이상한 잡기도 재주라며 찾아와 밥을 축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닭 울음소리를 기가 막히게 낸다거나 개처럼 짖으며 도둑질하는 것을 재주라고 우기는 사람이 그런 경우다. 그런데 이 두사람이 맹상군의 목숨을 구함으로써 유명한 고사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주인공이 된다.

재상 자리를 제안받고 진(秦)나라를 찾은 맹상군은 소양왕(昭王)에게 흰여우의 겨드랑이털만을 모아 만든 명품 외투를 예물로 바쳤다. 그러나 소왕이 "타국의 왕족을 재상으로 기용하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짓"이라는 중신들의 간언을 받아들이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맹상군을 죽이기로 함에 따라 그는 재상 취임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신세가 됐다. 소양왕의 애첩을 매수해 살길을 찾자는 계책이 나왔으나 애첩은 왕에게 바친 것과 똑같은 여우털 외투를 요구했다. 이때 도둑질이 주특기인 식객이 개소리를 내며 궁에 잠입해 외투를 훔쳐내온 덕분에 맹상군은 죽음을 모면했다. 그러나 귀국 중에 다시 진나라 군사의 추격을 받는 위기에 빠진다. 한밤중에 국경인 함곡관에 도달했지만 새벽이 돼야 관문을 여는 것이 법인지라 밤새 성안에 갇혀 추격병을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 됐다. 이때 또다른 식객이 나서 인근 닭들이 따라 울 정도로 절묘한 닭 울음소리를 내서 병사들이 일어나 관문을 열게 만든다.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듯이 하잘 것 없는 사람도 곁에 두다보면 긴요하게 쓰일 때가 있다는 뜻이리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출마 의지를 굳히고 인맥 구축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안 원장이 한 야권 인사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보도되기도 했다. 안 원장뿐 아니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다른 유력한 대선주자들도 대사를 앞두고 당선에 보탬이 될 인재 확보에 주력할 것이다. 그러나 찾지 않아도 인물은 넘칠지 모른다. 이런저런 능력을 과시하며 제발로 찾아오는 인물들이 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판알을 튕기며 접근해온 이런 사람들에게서 쓸만한 용도를 찾기는 어렵다.

맹상군처럼 도둑놈까지 마다않고 주변에 두는 것은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전국시대 얘기다. 사람 하나 잘 못쓰면 결정적 낭패를 보는 곳이 선거판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 모두 함량미달 후보를 공천했다가 발등이 찍히는 어려움을 겪었다. 출마한 후보들 캠프에서도 오히려 표를 깎아먹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지역에 신망을 잃은 인물들이 적잖았다. 후보는 마음에 들지만 주변이 마음에 안들어 다른 후보를 찍었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옥석 구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다않고 받아들인 결과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논공행상 과정에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일등공신이라는 자찬을 넘어 누구는 자리만 지켰다느니 하며 다른 사람의 수고를 깎아내리기 일쑤다. 정작 당사자의 기여도는 낙제점인데도 말이다. 대접이 시원찮으면 '토사구팽'을 입에 달고 다니며 내내 당선자를 헐뜯는다.

앞으로 대선 후보들 주변에도 입으로만 한몫하는 사이비 조력자들이 적잖게 출현할 것이다. 지방 군소도시에도 유력 대선 후보의 지역 대리인을 자처하며 설쳐대는 사람들이 나타날 공산이 높다.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덜떨어진 인사들이 대선 후보를 등에 업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고역이다. 하다못해 면 단위에 사람을 두더라도 사람 대접을 받는 인물을 가려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맹상군의 식객으로 풍훤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어느날 맹상군이 봉지의 채권문서들을 넘겨주며 빚을 받아오는 일을 시켰다. 풍훤은 가져간 채권문서를 채무자들이 보는 앞에서 불살라버렸다. 백성의 어려움을 헤아린 맹상군의 뜻이라고 밝혔음은 물론이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빚을 받아 의(義)를 사왔다"고 보고했다. 맹상군은 닭소리나 개소리를 내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들까지 곁에 두었지만 실제 중용한 것은 풍훤같은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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