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도 현수막도 없는 '조용한 선거'
확성기도 현수막도 없는 '조용한 선거'
  • 전영순 <수필가>
  • 승인 2012.04.1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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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순의 미국에서 온 편지
전영순 <수필가>

만 18세 이상 시민권자 유권자등록 해야 투표 가능
대부분 유세도 교회에서 … 시끌벅적 한국과 '대조'

4월, 봄바람이 선거바람에 뒤질세라 기승을 부린다.

올 해는 선거바람으로 지구가 술렁이는 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월의 대만 총통선거와 핀란드 대통령선거를 비롯하여 12월 한국의 대통령선거까지 세계 29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우리나라도 4월11일,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2월19일 18대 대통령선거가 있다.

지난 4월 11일 치러진 제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재외선거제도 적용이 최초의 실시되는 해이다.

이번 선거가 국외 교민들에게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이니 만큼 교민들뿐만아니라 다른 나라의 이목 또한 클 것이다. 남의 나라 일처럼 구경만 하던 투표를 미국 내에서도 할 수 있으니 투표도 글로벌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 선거를 비롯하여 대리인투표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네덜란드 선거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처음으로 실시하는 선거를 대비하여 재외선거인 등록신청이 지난 해 11월 13일에 시작하여 올 2월 11일에 마감되었다. 이색적인 풍경에 관심이 많은 나는 작년에 있었던 미국 시의원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한다.

시의원 투표가 있던 날, 현장을 둘러보고 오늘이 선거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교회와 도서관이 많다. 주정부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은 교육을 비롯하여 선거 투표는 물론 웬만한 행사는 대개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이 날도 외국인을 위한 수업(ESL Class)에서 미국의 투표가 어떻게 진행되는가 알아보기 위해 현장 답사를 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만 18세 이상 시민권 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된다. 하지만 유권자라 하더라도 유권자등록을 하여야만 투표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투표율이 저조하다고 한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어느 날부터 차량이 빈번한 교차로와 도로가에 가로세로 70X50cm 정도 크기의 간판이 세워졌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혀 있어 부동산업자가 땅을 팔기위해 세워둔 간판인 줄 알았던 것이 후보자를 알리는 유일한 포스터였단다.

선거가 있는 날까지 후보자를 알리는 확성기소리도, 거리의 퍼레이드도, 펄럭이는 현수막도 보지 못했다. 단지 선거 당일 투표장을 알리는 안내자 몇 사람이 골목에 서 있었고, 특정 정당후보자도움이 대여섯 명이 띠를 두르고 선거장 입구에서 친절한 미소로 인사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 같으면 선거가 있기 몇 달 전부터 후보자들을 알리기 위한 현수막과 명함이 행인의 눈과 손을 마구잡이로 앗아갔을 것이다.

이 뿐인가? 교차로마다 후보자를 포함해 특정 정당의 도움이들이 빨강, 노랑, 파랑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춰 질주하는 차량을 향해 절도 있는 인사와 퍼포먼스로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얼마나 멈추게 했을까 평상시 타인이었던 사람도 선거 때만 되면 아주 다정한 친구요, 정겨운 이웃으로 다가 와 있다. 몸을 사리지 않고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전력투구하고 있는 모습에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특정후보에게 한 표만 행사해야 하는 마음을 되레 송구스럽게 만든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가 본국의 정치, 경제뿐만아니라 세계의 안녕과 평화를 좌우하기도 한다. 밤낮 신발이 다 닿도록 뛰어다니는 후보자들의 심정을 읽는다면 선거권을 폐지로 취급하지는 못할 것이다. 후보자 또한 정성어린 유권자의 한 표에 대한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변했다. 70년대, 밥 세 번 얻어먹고 그 후보자의 이름 밑에 도장 두 번 찍고 나와 못내 아쉬웠다던 할머니의 투표시대는 지났다. 재외선거권까지 적용된 지금,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거나 헐뜯을 게 아니라 상대의 약점까지도 보듬어 가며 도약하는 우리의 정치문화가 거듭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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