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9>
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9>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4.12 2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릭샤를 타고 한참을 갑니다.

그가 세운 곳은 휘황찬란한 보석 가게 앞입니다.

지하로 이어진 그곳에 들어가면 곱게 나올것 같지 않지만 들어갑니다. 내가 들어가자 그제야 불을 켜는 지하의 가게에는 어설픈 돌멩이를 허름한 주석 반지에 박아 놓고 호된 가격을 부릅니다.

흥미가 있는 척 합니다. 그러나 살 일이 없고 관심이 없습니다. 둘러보고만 나오는 나를 째려보는 상인의 눈빛을 뒤로하고 나와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릭샤를 다시 올라탑니다.

릭�:邦� 50루피를 받아 챙겼으니 신이 났습니다. 다음은 양탄자 가게입니다.

말아 놓았던 온갖 양탄자 두루마리를 펼쳐 놓습니다. 이건 어떻게, 저건 요렇게, 요건 조렇게,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습니다.

이건 알리바바와 사십인의 도적이 타던 것과 같은 재질이고, 요건 신밧드가 타고 다니던 것과 같은 색상, 저것은 사하라자데가 깔고 있던 것과 동일한 모델이라고 요설을 늘어 놓습니다. 그러나 사려고 온 것이 아니니 당연히 안 삽니다. 덩치 큰 사내들이 날 째려 보지만 작아도 땅땅한 내 체구가 만만치 않은지 감금은 하지 않고 보내 줍니다.

다음은 대리석 가게입니다.

문 앞에는 석수쟁이가 돌을 쪼는 흉내를 내고 있고 안에는 그저 그런 타지마할 모형 뿐입니다. 요건 요래서 좋고, 저건 요래서 나쁘니, 이건 진짜다. 그러니까 사가지고 가랍니다. 내가 앞으로 여행길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그 돌뎅이를 메고 인도 전역을 헤맬일 있냐 싶으니 당연히 안삽니다. 째려보고 노려보고 흘겨보는 뒷통수가 따갑습니다.

"두 집만 더 갑쇼. 썰~"

"아 됐시여. 이제 집에 갈라요."

"늙은 부모가 약이 필요한데… 애새끼는 넷이고… 썰~"

"아유, 몰러유. 이제 난 집에 갈쳐."

가난한 릭�:方� 간신히 헤어집니다. 가난한 생활이 삶을 구차하게 만듭니다. 가난하니 구차하고, 구차하니 더욱 가난한 삶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릭�:滂湧� 사정을 봐주면서 돌아다닌 상점이 열을 넘습니다. 처음에는 사정을 하고 친구라고 하더니 상점을 들러주지 않으면 금방 돌변해서 웬수가 됩니다. 사는 것의 어려움입니다.

이제 한갓진 밤이 되어 숙소에 몸을 눕혔습니다. 여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골 숙소입니다. 화장터 바로 옆에 위치해서 창을 열면 시체를 태우는 모습이 24시간 그치지 않고, 창문을 닫아도 시신을 태우는 향내와 재가 들어오는 그런 숙소입니다.

삶의 끝은 죽음이고 죽음은 다시 환생을 통해 돌아온다는 믿음을 지닌 나라에 내가 또 왔습니다. 얼마나 살다 죽어야 이 윤회를 그칠까 싶습니다.

골목길에서 방울 소리가 들립니다. 이 늦은 밤 어디선가 또 한 구의 시신이 왔다는 소리입니다. 죽어서야 오는 곳. 그곳을 살아서 미리 왔습니다. 오늘 밤에도 밤새 삶과 죽음을 건너는 소리와 냄새가 그치지 않는 곳. 여기는 인도의 바라나시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