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카나리아
시인과 카나리아
  • 반숙자 <수필가>
  • 승인 2012.03.2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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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숙자의 느낌이 있는 창
반숙자 <수필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4월 국회의원 선거일을 앞두고 우리나라 정치판이 회오리를 치고 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누가 하든 국민들 밥 안 굶기고 춥지 않고 사람대접 받으며 사는 것 이상 욕심이 없으나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양식 있는 이들에게는 생사가 달린 양 예민한 사안이다.

오늘 아침 신문에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과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이 발표되어 눈길을 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46명중 홀수는 여성이고 짝수는 남성으로 반반의 숫자다. 이쯤 되면 여남동등이 실현되는 징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눈에 띄는 시인의 이름이 올라있다. 충북에 뿌리를 두고 감동적인 시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다. 참신했다. 혹자는 시인이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으나 당에서는 그보다 먼저 우리나라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던 인물임을 감안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를 통한 전국적인 인지도도 한몫 했으리라는 추측이다. 어떻든 간에 예술가도 정치에 참여하여 문화예술 분야의 입법에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그럼에도 노파심이 생기는 것은 어인일인가. 19세기 광부들은 탄광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카나리아는 유독 일산화탄소에 민감해서 갱도 안에 카나리아가 든 새장을 밀어 넣은 뒤 꺼내보면 유독가스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카나리아가 목소리를 잃고 죽어있으면 갱도 안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도 죽을 수 있는 유독가스가 가득 차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광산의 카나리아는 눈앞의 위기를 사전 예고해 주는 존재라는 데서 경제계에서 사용한다고 한다.

시인이 괴로워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는 말이 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1970년대 초 3선개헌과 유신헌법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던 때 한국을 방문하여 '시인이 괴로워하는 사회는 병들어 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통해 우리에게 새 힘과 용기를 심어준 바 있다. 그것은 시인의 양심을 믿고, 시인의 예리한 감성을 믿고, 시인의 정의감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감지하고 해결을 위해 고뇌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후보라는 명단은 아직은 미완성단계이나 혼탁하고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 정치판에 우리가 아끼는 시인의 카나리아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시인으로 해서 우리나라 정치가 정화되고 새롭게 변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반숙자의 느낌이 있는 창'에 글을 쓴지 1년이다. 귀한 지면을 허락해 주신 충청타임즈에 감사드린다. 그동안 쓴 글이 우리 사회에 얼마만큼의 카나리아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는 마음이 부끄럽다. 글이 나가고 다음 날이면 잘 보았다는 문자 메시지로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과 페이스북을 통해 소감을 올려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글을 쓴다는 것은 깨어있음의 행위다. 보름마다 돌아오는 몸살을 기껍게 감수한 것은 누군가 그 한사람이 내 글을 읽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천지가 봄이다. 처음인양 맞는 이 봄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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