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5>
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5>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3.1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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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기차에 탄 사람들은 저마다 커다란 트렁크를 침대 다리에 쇠사슬로 묶고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대단히 소중한 물건을 갖고 다니는 듯합니다. 물건을 꺼낼 때마다 살짝 열고, 무겁게 닫습니다.

그 트렁크 안이 궁금해집니다. 저들은 무엇을 저리 소중히 여길까. 저기에 혹시 인생의 비밀이 적힌 비서(秘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님 일생을 바쳐 모은 금덩이가 광채를 뿜으며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열려라 참깨~ 아무리 보려고 해도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열었다 닫는지 도통 볼 수가 없습니다.

중년의 사내가 잠에서 깼습니다. 허리춤에서 열쇠를 꺼냅니다. 기회가 왔습니다. 안 보는 척 옆에 가서 앉습니다. 잠이 덜 깬 사내가 무방비로 트렁크를 엽니다. 고개를 들이밀어 봅니다.

귀중히 묶고 잠근 트렁크 안에서 그가 꺼낸 것은 수건 한 장과 비누, 그리고 커다란 트렁크에는 달랑 그들의 주식인 밀가루 구운 '짜파티' 두어 장, 그리고 티셔츠 한 벌 그리고 끝입니다. 저걸 그리 소중히 여겨 트렁크를 잠그고, 쇠사슬로 엮어 침대 발치에 자물쇠로 잠그고, 열쇠는 소중히 가슴에 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것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훗날 몇 번 더 훔쳐봤지만 그들이 지니고 다니는 커다란 트렁크에 별다른 것이 들어있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르쳐 주려는 듯합니다.

가지지 않는 삶이 자유로운 삶이라 배웠습니다. 작은 것이 소중하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때묻은 그것들이 그리 아쉬워서 자물쇠로 동여 묶고, 열쇠를 허리에 차고 긴긴 밤을 잠 못 이루는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정(情)에 얽히면 낡은 양말 한 짝도 버리지 못하는 법입니다. 무섭습니다. 버리고 버려도 모자란데 정까지 얽혀 이 육신 다 낡아서 버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들이 트렁크에 목메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는 연민, 버릴 수 없는 애증. 거기에 엮여서 우리는 얼마나 초라해지는가.

그렇게 무거운 트렁크를 실은 열차는 계속 가서 성지(聖地) '바라나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인구가 많은 나라의 기차역은 한결같이 소란스럽습니다. 인도의 역은 독특한 풍경을 더합니다. 아수라장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듯합니다. 기차역은 거의 노숙자 풍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온 가족이 낡은 담요를 펼치고 앉거나 누워서 무언가를 기다리는지 사는지 모르지만 항상 그런 가족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잠자는 놈, 자다 깬 놈, 자려는 놈, 일어나는 놈, 일어난 놈, 구걸하는 놈, 구걸할 놈, 구걸을 하려다 마는 놈, 누운 놈, 누울려는 놈, 누울려다 일어나려는 놈, 일어나다가 다시 눕는 놈, 눕다가 앉는 놈. 어디를 가려는지 어디서 오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10억이 넘는 인간들이 노상 그러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어디서나 희노애락애오욕이 넘쳐 흐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밀실에 감춰져 보이지 않지만 여기는 다만 그것이 광장으로 나왔을 뿐입니다.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광장으로 가는 역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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