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4>
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4>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3.08 2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기차는 하염없이 갑니다. 어둠을 거둬내며 아침 햇살이 들어옵니다. 객차와 객차가 연결된 곳에 앉아 멍하니 앉아서 기차역의 아침 풍경을 구경합니다. 온갖 장사꾼들이 올라탑니다. 짜이도 팔고, 땅콩도 팔고, 사탕을 잔뜩 묻힌 과자도 팔러 다닙니다. 그렇지않아도 시끄러운 기차가 더 소란해지는 아침입니다. 저 멀리 들판에서 사람들이 살금살금 들판을 거닐고 있습니다. 그 걸음이 한가롭습니다. 유장한 걸음새의 손에는 저마다 깡통 하나씩을 들고 들판에 앉습니다. 그들 등 뒤로 장엄한 해가 붉게 떠오릅니다. 아름답습니다. 명상 중인가 생각했습니다. 인도가 명상의 나라라더니 이른 새벽부터 들판에 앉아 명상을 하는구나,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명상을 위해 들판에 나가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 대변을 보기 위해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유장한 걸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온통 대변 투성이 길을 조심스레 걷느라 그런 자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물통은 한 잔의 차를 마시기 위함이 아니라 볼일을 다 본 후에 뒤처리를 위한 물통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콩깍지가 꼈다'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명상의 나라라지만 가난하고 남루를 버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토록 예쁘게만 보았다는 사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콩깍지를 뒤집어 쓰고 사는지 모릅니다. 똥 누러 가는 놈이 명상하러 가는 놈으로 보이고, 언청이 여편네가 절세 미녀로 보이고, 이빨을 갈면서 자는 서방이 수호신으로 보이는 콩깍지. 우리네는 그러고들 삽니다. 그러나 그것이 설혹 콩깍지인들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콩깍지 속에서 사는 것을요. 콩깍지에서 살게끔 되었으니 콩깍지로 사는게지요. 또 콩깍지가 안 씌이면 무슨 재미로 살수 있을까요. 콩깍지가 씌어야 사랑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슬픔에 한탄도 하는게지요.

저같이 평범한 범인(凡人)이야 이렇게 사는 수밖에 없지요. 너나없이 죄다 부처가 되고 성인이 되고 군자가 된다면 그 또한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아기는 무슨 수로 낳고, 악다구니를 치며 싸우는 꼬라지는 어디서 보며, 죽네 사네 머리끄뎅이 잡고 아귀다툼하는 것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이렇게 살다 죽으라는 인생이니 애면글면 지지고 볶고, 끓고 태우며 다글다글 사는게지요. 그것이 사람 사는 과정인걸 어쩌겠습니까.

된장 한 종지로 싸우지 않으면 뭘로 싸울까요? 싸워야 중생이고 다퉈야 사람입니다. 그렇게 안하면 모두 우화등선하여 신선의 도를 누리며 살테니 그것 또한 무료하기 마찬가지입니다. 만족한다는 것, 이루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더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이니. 그리 살면 재미가 있을리 없겠지요.

범부는 범부의 삶이 있고 성인은 성인의 길이 있을테니 저마다 주어진 크기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최선임을 배웁니다. 냄새를 풍기는 싸두는 여전히 냄새를 풍기고 나는 여전히 혼자고 기차는 하염없이 달립니다. 저마다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일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