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닭
김유정의 닭
  • 반숙자 <수필가>
  • 승인 2012.02.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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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숙자의 느낌이 있는 창
반숙자 <수필가>

집에서 기른 씨암탉을 곰 솥에 안친다. 사위가 오면 잡아준다는 씨암탉을 식구들 먹이려고 수삼과 대추를 넣고 물을 자박하게 붓는다. 이제 가스렌지에 올려 느긋하게 고아내면 저녁 한 끼 진수성찬이다. 그런데 오늘 곰국을 준비하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마트에 가면 닭 한 마리에 오육천원이면 산다. 서민의 음식으로 식탁에 오르는 닭이 서민을 자처하는 우리 집 식탁에 오르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김유정 때문이다. 아니 김고운 때문이다.

우리에게 소설 '봄. 봄, 동백꽃. 금따는 콩밭'을 남긴 김유정은 1908년, 지금부터 백여 년 전에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천석지기에다 서울에 백여 칸 되는 집을 가진 부자였으나 일곱살 때 어머니를, 아홉살 때 아버지를 여의면서 가세가 몰락했다.

소설가로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던 그가 29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떠났다. 그가 결핵으로 고생할 때 친구에게 "돈이 되거든 닭이나 한 서른마리 고아먹고 싶다 "했다는 것이다. 생활고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보지도 못하고 속이 얼마나 허했으면 닭 한 마리도 아니고 서른마리를 고아먹고 싶다 했을까.

김유정 얼굴 위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 바로 최고은 영화감독이다. 지난해 2월로 기억한다. 매스컴에서는 '32세의 영화감독 생활고로 사망' 이라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1년 전이다. 그녀는 갑상선 기능항진증과 췌장염을 앓고 있었다.

일은 풀리지 않고 병원비는 고사하고 당장 먹을 양식도 없었다. 그녀의 죽음을 알게 한 쪽지 한 장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한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한 많은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 시대로 진입한다는 세상에 먹지 못해서 세상을 떴다는 말이 되기나 하는 소리인가.

더구나 그는 예술인이다. 이 사건으로 우리나라에 예술인 복지법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고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니까 최고은 감독은 한 알의 밀알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예술인을 한량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밥 먹고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제 흥에 겨워하는 짓거리라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서는 문화예술을 싸잡아 생존에서 비껴가는 분야라 백안시한다. 이런 무식한 사람들을 국회로, 정치판으로 보내서는 안된다. 예술이 밥이 되고 국력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티아라, 동방신기, K팝이 세계를 주름잡으며 국위를 선양하고 있지 않는가. 가는 곳마다 열광하는 그 나라 젊은이들을 보며 누가 대한민국을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구걸하던 나라라고 하겠는가.

'엄마를 부탁해'를 쓴 소설가 신경숙은 국회의원 수십 명이 떼를 지어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애쓴 국위선양을 책 한권으로 거뜬히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 닭 한 마리는 고 김유정 소설가에게, 고 최고은 감독에게 먼저 분향하고 먹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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