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1>
인도에서 사두(saddu)를 만나다 <1>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2.1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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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고이는 것이 싫어서 베트남에 두어 해 살았더니 다시 정체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디든 가야 하는데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인도입니다. 벌써 여러 번 갔다 왔는데도 항상 새로운 느낌을 받는 나라. 권태로움이 없는 그곳을 다시 갑니다. 내 삶의 깊이, 그것이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밤늦어 델리 공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십수 년 전에는 소도시 대합실만한 곳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틀이 잡힌 국제공항 같습니다.

그러나 수속을 끝내고 공항 밖으로 나오면 열대의 열기와 어두운 저편에는 여전히 눈이 퀭하고 시커먼 사내들이 공항 앞에서 담요를 덮고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쳐다보는 공허한 눈빛. 퀭한 눈이 깊은 영혼을 담은 듯 보입니다. 처음에는 무섭고 두려웠는데 이제는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 어느 전생에선가 여기에서 한 번쯤 살았었든가 싶습니다. 저들의 가난한 침묵, 텁텁한 무더위, 어두운 골목길, 오토바이 릭샤로 번잡한 소음, 나뭇잎에 각종 향신료를 넣어서 입으로 씹어 붉은 침을 섞여 뱉은 '빤'이라는 잎담배의 흔적이 낯설지 않습니다.

구석에서 낡은 담요를 깔고 노숙을 하는 일가족의 아이는 뒤척거리고 자고 있고, 그 아기의 입가에는 파리가 달라붙어 있습니다. 지어미는 아이를 안고 다니며 동냥을 했겠지요. 하루 종일 지치도록 다녀도 여인네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짜파티를 두어 장 살 만큼의 동전 밖에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지친 몸에 밀가루떡 두어 장 먹고 지친 허기를 끄면 힘들고 힘든 하루가 갑니다. 살자고 덤벼도 죽자고 덤비는 가난. 죽자고 덤벼도 살아내야 한다는 운명. 저 모자의 모습에서 전생의 업(業)을 봅니다. 전생에 나는 어쩌면 인도의 가난한 릭�:邦潔珦뼉層� 모릅니다. 일가는 이루었으나 가난은 벗을 수 없어 뼈만 남은 몸으로 종일 릭샤를 끌고 다녔겠지요. 몸 부대한 브라만을 태우고 땀을 흘리고 가파른 숨을 내려 쉬면 동냥처럼 던져주는 10루피 지폐 두어 장을 받아 그걸로 짜파티 몇 장을 사 와 일가를 부양했겠지요. 그렇게 짜파티 몇 장으로 한 끼를 때우고, 하루를 보내는 시난고난 체념한 삶을 살았겠지요. 그렇게 낡은 육신이 더 낡을 곳이 없어 숨을 거뒀겠지요. 나보다 더 가난한 지어미는 내가 끌던 릭샤를 팔아 나무를 사고 내 낡은 육신을 눕히고 불을 붙였겠지요. 그리고 어느 작은 강에 재와 같이 던졌겠지요. 그렇게 몇 생을 거듭해서 태어나고 태어난 뒤에 이제 다른 모습의 내가 여기 다시 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어둡고 칙칙한 곳이 낯설지 않은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집 떠난 여우가 고향을 찾듯 나 모르는 무언가의 인연이 나를 이쪽으로 이끌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몇 생을 거듭 살다 태워졌을 그곳을 찾아 갑니다. 죽어서 갔던 길을 살아서 갑니다.

생각하면 천국이니 윤회니 하는 것들의 부질없음을 느낍니다. 살아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삶. 그것만이 소중한 진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한가지입니다. 살아내야 한다는 것. 그것도 온몸으로 진지하게 견뎌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참다운 삶이라 믿습니다.

※ saddu : 인도에서 수행자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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