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봉투
돈 봉투
  • 반숙자 <수필가>
  • 승인 2012.02.0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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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窓
반숙자 <수필가>

명절 쇠고 아이들이 돌아간 썰렁한 집에 멀리 사는 글 제자가 찾아왔다. 해마다 정초면 어김없이 달려와서 세배를 하는 제자다. 많은 제자를 길렀지만 먹고사는 일에 바빠서 글 스승이라고 따로 예를 올리는 사람은 드물어 그 제자의 방문은 한아름 봄빛이다.

제자가 돌아가고 남긴 봉투 하나. 우리 내외는 서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액수가 많거나 적고를 떠나서 양가 부모님 모시면서 자녀들 공부시키고 자신은 대학공부를 하며 분주하게 사는 사람이 한 때 글을 배운 스승을 향한 변함없는 마음에 감동되어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이번 명절에 모처럼 집에 온 우리 아이들도 봉투를 내밀었다. 여여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지만 마음은 그렇질 못하다.

이즘 세계경제 악화로 우리나라에도 불황이 깊어 자식들 먹고사는 일에도 걱정이 앞서는 부모 마음이다.

그 봉투를 준비 못해 가고 싶은 고향에 가지 못하고 객지에서 설 명절을 서럽게 보내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선 명절이 오면 세상의 부모들은 객지의 자식들이 모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첫째가는 기쁨으로 친다. 형편이 여의치 못해 못 오거나 또는 잘 나가는 자식들은 연휴를 틈타 해외여행으로 식구가 통째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명절에 자식 얼굴 보는 일도 축복이지 싶은 것이다.

거기다가 부수적인 기쁨은 어린 손자손녀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이고 승진의 기쁨, 합격의 기쁨까지 덤으로 따라오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봉투는 바로 그런 자식들 상황의 바로미터다.

봉투가 두둑하면 잘 나간다는 징조이고 얄팍하면 뭐가 잘 안 풀린다는 낌새이기에 부모 마음은 희비가 교차하는 것이다. 더러는 상황의 여지없이 여분의 마음을 인사치레로 내미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부모는 알아도 모른척 받는다.

그 돈봉투가 이즘 정가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온다. 여·야가 따로 없이 주었네, 안주었네, 받았네, 안받았네 공방이 가열한다. 강 건너 불구경처럼 바라보는 서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그 봉투가 주는 의미는 부패한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정치불감증의 증세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돈봉투를 뿌리는 시간에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당 5만원을 벌기위해 목숨까지 내걸고 일하는 근로자가 부지기수이고 그 봉투가 없어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가 수술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사실 봉투는 투명하고 긍정적인 물건이다. 가난한 경로당에 슬그머니 두고 간 연탄 100장값의 봉투, 연말에 구세군 냄비에 넣는 익명의 봉투, 병고에 시달리는 친구의 침상에 슬그머니 두고 간 봉투, 이런 봉투들은 냉냉한 사회에 온기를 보태주는 사랑의 봉투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을 더욱 도탑게 하는 매개체다. 이런 봉투가 요즘 수난을 당한다.

부모는 이렇다. 많이 넣은 봉투에서 얼마를 빼내어 얇은 봉투에 채워 넣고 자식들이 돌아갈 때 그 몇 십배 사랑을 실어 보내야 좋은 사랑의 온도다. 잘사는 자식은 잘살아줘서 고맙고 못사는 자식은 못살아서 더 애처롭다. 이런 마음을 누가 시켜서 하겠는가.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공을 들여 만든 무형의 보배가 아닐까 싶다.

봉투 출처를 투명하게 밝혀라. 그리고 부정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죄하라. 무엇보다도 정직하게 땀 흘려 사는 서민의 믿음에 만 배로 보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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