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풍경…산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 6
베트남 풍경…산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 6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1.2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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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노을이 진다. 장엄한 노을이 하늘 저편으로 넘어간다. 하루의 일과가 끝났다. 이제 밤 베트남의 풍경이 펼쳐진다.

저녁 일몰을 기다려 화려한 식당을 차려 놓고 사이공 강을 유람하는 범선이 있다. 저녁 어두울 무렵 승선을 시작한다. 그런 배는 서너 척이 되는데 배의 모양은 같아도 겉모양의 그림은 제각각이다. 상어처럼 생긴 배도 있고 오징어처럼 그려진 배도 있다. 주로 이 동네를 찾는 관광객들이 추억을 만들고자 이용한다.

그리고 추억은 분명 만들어진다.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뜨네기를 상대로 하니 여기도 바가지는 예사로 안다. 저녁 강바람은 시원하다. 잘 차려진 테이블에 앉아 이름도 모를 것들을 주문한다.

이름 모를 재료들로 만들어진 것들이 이름 모를 요리로 나오고 음악 소리 지화자 좋고 배는 항구를 떠난다. 배는 하염없이 시간을 때우며 어디론가 간다. 두어 시간 유랑을 하던 배가 다시 항구로 돌아올 때쯤이면 웨이터가 계산서를 자져 온다. 딱 맞는 액수를 건네지 않는다면 잔돈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똑같은 옷을 입은 웨이터들이 테이블 시중을 들고 있다가 계산을 할 때가 되면 다른 웨이터로 바뀐다. 어느 놈이 내 돈을 받아 갔는지 모른다. 영수증을 달라고 해도 모른다고 하고 잔돈을 달라고 해도 받은 놈을 모른다.

항구는 이제 장사진이다. 온갖 택시와 시클로가 손님을 기다린다. 갖가지 택시는 갖가지 미터기를 달고 있다. 항구에서 기다리는 택시 미터기는 제대로 박힌 것이 거의 없다. 어떤 택시의 미터기는 마치 양동이로 물을 쏟아내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심지어는 계산을 하기 위해 돈을 꺼내는 순간까지 미터기가 떨어진다.

택시가 두려우니 이 동네의 명물인 시클로를 타고 싶어진다. 보기에는 낭만적이지만 매연을 마시며 달리면 두 번은 타고 싶지 않다. 시클로 기사는 온갖 힘든 표정과 웃음을 지으면서 '저건 뭐고 저건 뭔데 저건 또 뭐라고 하는 뭐다'라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그리고 신세 한탄을 한다. '아이는 몇이고 노모는 아프고 여편네는 골골한다' 잠시잠깐 가는 사이에 시클로 기사의 인생에 대해 알게 된다. 다 왔다. 그러나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다시 한 번 시클로 기사와의 흥정에 들어가야 한다. 너무 멀었다. 힘들었다. 마누라가 아프다. 노모가 아픈 것 알지 않느냐? 아이들이 학교도 못 가고 있는 사정을 알면서 그러면 어쩌느냐 하여지간 시클로 기사의 가정 형편까지 고려해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는 끝이 난다. 경치를 구경하고 추억을 간직하고자 한 사이공강의 유람은 그렇게 끝이 난다. 우리네 인생처럼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더 많은 경험을 했다.

한 달을 일하고 월급을 받는 순간은 잠깐이다.

그것도 통장의 숫자로 받을 뿐이다. 잠깐 보고 마누라한테 뺏긴다. 마누라에게 용돈을 받아 궁하게 쓸 밖에는 없다. 그렇게 당나귀로 살다가 지나 보면 더 예쁘게 살지 못했던 세월이 아쉽다. 그러나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다. 즐거움은 잠깐이다. 똑같은 과정의 반복이다. 그렇게 알고 체념하며 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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