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 며칠
이판사판, 며칠
  • 김우영 <소설가>
  • 승인 2012.01.1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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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우리말 나들이
김우영 <소설가>

"까짓 거 이제 이판사판이다. 죽고 살기로 한 번 해보자!"

우리는 어떤 일을 하다가 막바지에 일이 잘 안될 때 악을 쓰며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고 종종 말한다. 여기에서의 이판(理判)은 참선하고 공부하는 스님을 말하며, 사판(事判)은 절의 업무를 꾸려가는 스님을 뜻한다.

억불(抑彿)정책을 쓴 조선시대에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 막바지 같은 것이었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지막 신분 계층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판사판은 곧 막다른 데에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의미한다. 이판사판을 '이판새판'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판사판이 맞는 말이다.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 성 춘향을 만나 백년언약을 하지만 이 도령 아버지의 갑작스런 귀경으로 이별하게 된다. 이걸 알게 된 춘향 어머니 '월매'는 대청마루에 앉아 이렇게 길게 목 놓아 소리 한마당을 한다.

"내 딸 춘향이 상사병으로 원통히 죽고 나면-- 딸 잃고 사위 잃고 혈혈단신 -- 이내 몸이 뉘를 믿고 산단 말인고-- ! 남 못할 일 그리마오 그리마오--?"

위에서 나오는 혈혈단신(孑孑單身)은 의지할 곳 없는 홀몸이란 뜻이다. 이를 '홀홀단신'으로 잘못 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혈혈(孑孑)은 고단하게 외로이 서 있는 모양을 가리킨다. 반면 '홀홀'은 나뭇가지에 마지막 잎새가 홀 홀 가볍게 날리는 모양새를 나타낸다.

우리가 보통 날짜를 손꼽아 기다릴 때 잘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도 혼동이 잦다.

"그이 만날 날이 몇일 남았지?"

"군대간 막내아들 휴가일이 며칠 남았지?"

앞의 예문중에 앞의 문장 '몇일'은 틀리고, 뒤의 문장 '며칠'은 맞는 말이다.

한글 맞춤법은 두 개 이상의 단어가 어울려 이루어진 문장은 각 각 그 원형을 밝히어 기록하게 되어 있다. 다만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원형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이다.

'며칠' 이 '몇+일(日)'에서 온 말이라고 보면 각 각 원형을 밝혀 '몇일' 이라고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은 '며칠'의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몇'이란 말의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가 오면 끝소리인 ㅊ 이 뒤를 따르게 된다. 그 예의 하나로 몇+이나 [며치나], 몇몇+을 [면며츨]처럼 소리 나는대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몇' 다음에 명사가 붙게 되면 끝소리 'ㅊ'이 음률이 'ㄷ'으로 소리나게 되는 것이다.

그 예의 하나로 몇 월[며둴], 몇 억[며덕]처럼 된다는 말이다. 며칠이 '몇+일'에서 온 말이라면 뒤에 명사가 붙는 것이어서 [며딜]로 소리 나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없다. 따라서 '몇+일'의 구성이라고 보기 어려워 그 원형을 밝혀 적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몇일' 이 아니고 '며칠' 로 적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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