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학교폭력이 오히려 존중돼야 하는 이유
지금의 학교폭력이 오히려 존중돼야 하는 이유
  • 충청타임즈
  • 승인 2012.01.1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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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학교폭력을 막겠다고 온 나라가 난리다. 정부는 물론 지자체 차원의 대책회의가 연일 쏟아지고 있고 언론 역시 "이번 기회에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특유의 구국적 결기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런데 그들이 내세우는 대책이라는 게 하나같이 협박에 가깝다. 폭력학생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아예 격리조치시키는가 하면, 감시요원을 학교와 주변에 상주시켜 순찰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다간 학교 정문에까지 정복 경찰을 배치할 판이다.

우리나라에 왜 갑자기 학교폭력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이런 식의 발상이라면 학교폭력을 근절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세련되고 정교한(?) 폭력을 촉발시킬 뿐이다. 마치 보이스피싱의 진화처럼 말이다.

범죄와 일탈은 하느님도 못 막는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범죄는 창세기의 유물이다. 뱀의 유혹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하와는 남편인 아담까지 죄인으로 만들어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는가. 그들의 아들, 카인 역시 질투와 시기심에 사로 잡혀 동생 아벨을 죽였다.

세계에서 국가통제와 감시가 가장 살벌하다는, 천하의 못된 북한에서도 범죄는 늘 벌어진다. 죽은 김정일은 언젠가 살인과 강간, 절도 등 강력범죄를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너무 단순한 비유일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학교폭력을 막겠다고 쏟아내는 대책들 이른바 강력한 처벌과 감시, 응징이 효과를 볼 수 있다면, 북한사회는 아마도 무균질 사회가 되고도 남았다. 자료에 의하면 그 서슬퍼렇던 전두환의 삼청교육대에서조차 입소자들의 일탈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폭력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교육정책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해법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태어나 젖을 떼자마자 '오린지'부터 옹알거릴 것을 강요받고,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오로지 성적순으로만 평가받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상대를 밟고 죽여야 내가 산다'는 교훈을 늘 뼈저리게 느끼며 살 수밖에 없다.

중고등학교에선 수능과목이 아니라며 우리의 역사가 서자로 밀려난지 오래이고 대학에선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인문학이 천대받거나 아예 폐강되는 지경이다. 때문에 대학 졸업 때까지 소설은 커녕 신문 한번 보지 않은 학생들이 수두룩한 판에 어떻게 그들에게 상대를 배려하고 공동체 의식을 가질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학교마다 폭력이 넘쳐나고 젊은이들 사이에 시기와 냉소가 횡행하는 작금의 현실은 그 근원이 철저하게 잘못된 교육에 있다. 뿌리도 없고 족보도 없는, 그리하여 오로지 이기적이고 물리적인 경쟁심만 강요되는 교육의 종말이 지금, '학교폭력'이라는 것으로 그 서곡을 들려주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대책이라는 것들이 온통 입에 거품을 물고 내뱉는 처벌과 응징 뿐이니 이러다간 우리 아이들이 채 꽃도 피우기 전에 전과자의 굴레만 씌우지나 않을까 덜컥 겁이 날 정도다.

지금의 학교 폭력을 마냥 비판하고 배척한다고 해서 결코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내용과 흐름, 추이에 천착하며 전후관계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예방책을 만들고, 왜곡되고 잘못된 교육도 바로 잡을 수 있다.

뻔한 얘기이지만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선다. 언론들이 앞다퉈 우리의 학교현장에 망국적인 병이 도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맞다. 학교폭력이 이대로 가다간 결국 나라까지 말아먹는다.

지금 우리는 잘못된 교육정책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라에 어떤 해악을 가져오는지 '학교폭력'이라는 헷갈리는 현상을 통해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교육을 바로 잡아야, 거짓말쟁이가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천박한 국가문화도 바로잡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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