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으면 참 좋겠다
이랬으면 참 좋겠다
  • 정상옥 <수필가>
  • 승인 2011.12.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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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상옥 <수필가>

며칠 남지 않은 올해의 끝자락에 서서 땀 흘려 뛰어보지도 않은 지난날을 후회하며 덧없이 흘러간 세월만 서글퍼하기보다는, 섣달은 희망을 준비하며 새해의 초석을 다지는 달이라는 깨달음으로 마음이 한껏 밝아졌으면 좋겠다.

암울하고 모진 세파에 헐떡이던 한숨소리와 이루지 못한 삶의 무거운 등짐을 아직 내려놓지 못했을지라도, 삭막하고 높다란 고난의 언덕을 넘을 때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더 평안의 날이려니 하며 희망찬 신념으로 꿈을 키우는 발걸음이 힘차게 빨라졌으면 좋겠다.

"어차피……."라며 포기와 절망으로 진취와 도전의 발상을 묶어버리던 소극적인 태도와 못난 자존심을 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 수 있어!'라며 어떤 불리한 상황이 오더라도 헤쳐 나갈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용기로 아침을 기다리는 날이 새해엔 많았으면 좋겠다.

공연스레 마음이 울적할 때 시간에 관계없이 외투하나 걸치고 나와 사라락 사라락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차 한 잔 앞에 놓고 허접스러운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벗이 없다는 걸 아쉬워하지 않고 그런 누군가의 그럴 수 있는 벗이, 이제 나였음 좋겠다.

재래시장 구석진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시들어버린 야채 두어 가지 앞에 놓고 곱은 손을 비비며 떨고 있던 노파의 애절한 눈빛을 무심히 지나치고 와서 따뜻한 잠자리에 들 때서야 한겨울 찬 땅 바닥보다도 더 차가운 심성을 부끄러워하는 내가, 정녕 아니었으면 좋겠다.

세상살이가 늘 한결같기를 바라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변화에 혼란스러울지라도 듣고 본 일들을 외곡하거나 욕설과 비평에 귀를 더 기우리며 내 주관적인 편견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참된 진실을 헤아릴 줄 아는 혜안과 냉철하고 현명한 인격의 소유자가 나였음 좋겠다.

겨울 찬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설경이 아름답고 변함없는 소나무 푸른 정기가 숲길에 청청하게 깃든 산이 늘 거기 있고, 산 안에 찾아드는 누구라도 포근히 품을 수 있는 아량과 배려가 내 맘 속에도 그 산처럼 풍만하게 자리했으면 좋겠다.

거대한 시간의 늪에 빠져 나 자신이 저지른 많은 잘못들을 용서받지 못한 채 먼 훗날 그 기억조차 망각하면서 누군가에게 받은 작은 상처만을 옹이처럼 가슴 한구석에 박아놓고 털어내지 못하거나 혹은 용서하지 않은 채 나이만 먹어가는, 덜 여문 인격의 어른이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짜여진 시간에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부지런히 일하다가도 어느 날 문득 모든 일상 내려놓고 노트 한 권과 연필 한 자루 달랑 들고 여유롭고 한적한 어디쯤에서 꽃과 나비와 햇살과 바람과 �!玖� 질펀한 게으름도 피우면서, 한 이레쯤 지내다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노닐다가 작은 풀꽃 한 송이 피는 것도 길섶에서 만나고 풀잎 끝에 애처롭게 매달린 이슬 보면서 눈물도 글썽이다 몇 십 년 묵었던 심연에서 이끼 걷어내고 퍼 올린 말랑한 감성으로 명주실 타래보다 더 부드럽고 고운 수필 몇 편을 밤새워 지어내는 글쟁이가 됐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정말 이랬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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