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원하지 않는 국익은 없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국익은 없다
  • 정태일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1.11.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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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미 FTA가 과연 국익에 도움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있다. 국민은 한미 FTA가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정부와 여당은 국익에 상당히 보탬이 되기 때문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이에 우리는 국익에 대한 잣대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국민이 원하고 이해하는 국익은 무엇이며, 정부와 여당이 이해하는 국익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도대체 한미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찌 정부와 여당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몰상식한 꼼수를 통해 야당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은 채 국회에서 처리하였나 하는 의문이 든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이 마치 국익을 무시한 채 반대만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으로 매도한다. 물론, 야당의 대표주자인 민주당은 과거 한미FTA에 대하여 국익 차원에서 성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국익이라 하는 것이 여당과 야당에 따라 다르고, 정부와 국민에 따라 왜 다르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과연 국민이 원하지 않는 것이 국익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로 국민이 없는 국가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진리이다. 따라서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 원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정책이라고 할지라도 추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극단적인 비유가 되겠지만 수많은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전쟁에 의해 좌지우지(左之右之)되었다. 분명 전쟁을 결정한 통치자들은 전쟁이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고 항변했겠지만 국민은 전쟁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국익에 대한 관점은 통치자와 국민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지 않는 국익을 선택한 통치자는 국가와 국민을 위험에 빠지게 한 사례가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사실 한미 FTA를 생존의 문제로 여기고 저항하는 세대는 20대에서 40대까지이다. 대한민국에 있어 2040세대는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세대이다. 2040세대는 IMF사태로 인해 희생만을 강요받은 세대이다. 지금 이들은 글로벌 경제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취업이든, 창업이든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2040세대가 강자만을 위한 협정인 한미FTA에 반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당장은 한미FTA가 우리의 삶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40세대는 가까운 미래에 한미FTA로 인하여 극단적인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정부와 여당은 최소한 2040세대에게 한미FTA에 대한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무책임하게 한미FTA가 2040세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항변하지 말고, 2040세대의 지성을 믿고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와 여당은 2040세대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국민에게 존재가치를 잃은 정부와 여당에게 한미FTA가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항변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국민과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이미 국회에서 비준된 것이 번복될 가능성이 없다. 이제 국민은 한미FTA가 지닌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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