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세계화, 당신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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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인섭 기자
  • 승인 2011.11.23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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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大母' 박병선 박사 타계
이시종 충북지사(좌)와 한범덕 청주시장(우)이 23일 청주 고인쇄박물관에 마련된 故 박병선 박사의 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유현덕기자
외규장각 도서반환 큰 업적


"佛, 조선 침노 마무리" 유언

정부, 국립묘지 안장 추진

충북도민 애도물결 줄이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직지(直指)'를 발굴한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가 23일 오전 6시(현지시각 22일 밤 10시40분) 타계했다. 향년 86세.

이시종 충북도지사와 한범덕 청주시장 등은 고인쇄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분향을 하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직지의 본향 충북과 청주를 세계에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고 박 박사를 잃은데 대한 도민과 시민들의 슬픔도 전했다.

'직지 대모' 故 박병선 박사는 직지와 함께 프랑스가 약탈한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가 파리 국립도서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 세계 서지학계와 한국의 해외문화재 반환운동에 큰 업적을 세웠다.

박 박사는 지난해 1월 귀국해 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은 후 파리로 돌아가 병인양요 관련 저술 준비 작업을 해 왔다. 병세가 악화돼 파리 잔가르니에 메디컬 의원에서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아 지난 19일부터 혼수상태에 빠졌다.

정부는 박 박사의 국가적 공로를 인정해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박 박사는 화장 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변에 유해를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겨 정부와 유족들이 장례 방식 등을 조율 중이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박 박사 빈소를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 차렸다.

박 박사는 투병 중에도 심혈을 기울인 저술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2편'을 마무리해 달라는 유언을 유족들에게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천주교 신자인 박 박사는 결혼을 하지 않아 직계가족이 없다.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 박사는 1950년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6·25 이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소르본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를 전공한 박 박사는 파리국립도서관을 자주 출입하면서 직원들과 인연을 맺어 특별연구원으로 채용됐다. 동서양을 망라한 많은 책을 소장했던 파리국립도서관은 1972년 '세계 도서의 해'가 선포되자 'BOOKS'라는 전시회를 기획했고, 한자문화권인 동양 담당에 적합했던 박 박사를 채용해 한국의 책 선별과 해제를 맡겼다. 파리국립도서관과의 인연은 결국 직지와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 발굴이라는 커다란 성과로 이어졌다.

정부는 1999년 그의 공로를 인정해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청주시는 같은 해 4월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박병선실'을 운영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1967년 파리국립도서관 한국 서적 코너에서 '직지'를 처음 발견한 박 박사는 세계 서지학계에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고증했다. 그의 연구와 국내 학자, 정부, 청주시의 노력 끝에 2001년 9월 4일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다.

금속활자 직지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78년 앞서 제작된 것이라는 점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기까지 그의 노력은 결정적이었다.

직지 고증 이후 외규장각 도서 행방을 찾아 나선 박 박사는 1975년 베르사이유에 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 별관(파손 서적 보관 창고) 수장고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발굴해 국내에 알려 지난 4월 14일 1차분 75권이 규장각에 보관되도록 하는 성과를 올렸다. 1866년(고종 3년) 프랑스 극동함대 로즈 제독이 강화도를 점령한 후 외규장각에 소장됐던 의궤를 약탈한 지 145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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