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1.11.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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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가슴에 불을 지른 듯 온 산하가 울긋불긋 단풍으로 곱게 물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낙엽이 진다. 에메랄드빛 하늘은 맑고 쾌적한 기온마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이 좋은 계절에, 시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시인이 된 기분이 들 것이다.

이 곡은 ‘안네 바다’의 ‘Dance towards spring’이라는 노래인데, 노르웨이 출신 뉴에이지 그룹 ‘Secret Garden’이 편곡하여 1995년 1집 ‘Song From A Secret Garden’에 수록된 ‘Serenade to spring’으로, 원곡에 ‘한혜경’이 가사를 붙였다. 원제 ‘Serenade to Spring’보다도 번안곡의 제목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우리에겐 훨씬 정감 있게 와 닿는 곡으로, 며칠 전 진천과 괴산 노인회관 공연에서 소프라노 연광자 선생이 불렀다. 노래 제목만큼이나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나 한껏 음악에 취한 노인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노인회관에는 위문공연을 종종 온단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물놀이나 민요, 창이 고작이었는데 아주 특별하다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노인들에게 이런 이면이 있으신 줄은 몰랐었다.

이번 ‘찾아가는 예술공연 및 전시’ 행사는 종합예술행사로 기획됐다. 미술분야에 유화, 수채화, 공예, 서예전시. 사진에 풍경, 인물화전시. 문학분야에 시 수필화 전시 및 시 수필 낭송. 음악에 성악과 미니오케스트라. 연예부문은 품바난타, 가요, 원맨밴드 연주로 구성하였다. 노인들에게 어울릴 국악이나 풍물, 사물, 민요, 창을 배제한다는 기본계획하에 색다름을 보여드리고자 노력했지만 내심 성공 여부에 대하여는 심히 우려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뭇잎으로 상징되는 한 생애는 봄에서 시작하며 가을에 끝난다. 사계(四季)에 나무들은 그 잎사귀를 맺음에서 시작하여 잎사귀를 잃음에서 끝난다. 노인들은 가을을 지나 잎을 잃은 겨울쯤에 살고 계신다. 가을은 한 생애의 형상화 또는 결실을 획득하는 시간이며 또한 한 생을 이루었음으로 인하여 이제는 사라져 가는 상실을 예비하는 시절이다. 어쩌면 단풍이란 봄과 여름의 시절을 힘껏 살아내었다는 강변(强辯)이리라. 계절의 바뀜이 가져다주는 정서의 무게를 느낀다.

‘찾아가는 예술공연 및 전시’ 행사는 청풍명월예술제의 일환이다. 1959년 처음 시작된 청풍명월예술제는 우리 전통예술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한편 현대 예술을 접목해 우리의 예술문화를 한 차원 승화시키고 있다. 충북의 대표축제로서 그간 충북도민들에게 소금과 빛의 역할로 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해 메마르고 거친 시대에 정신적인 청량제로서의 풍요로운 예술문화를 선사해 왔다.

청풍명월예술제를 통해 문화예술에 소외받고 문화 예술에 목말라 있는 충북도민을 위하여 찾아가는 통합 예술제로 다양한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충북도민과 함께하는 예술문화로의 저변확대를 이루어야 한다.

누가 봐도 젊은이들이나 좋아할 프로그램이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이제 마지막 삶의 끝에 계신 분들. 그들 노인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동의 눈시울을 보며 행사를 추진한 보람으로 노인들에게 전시작품들을 선사하고 돌아오는 마음은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다.

가을은 내 나이쯤의 계절이다. 촛불이 꺼지기 전 크게 발광하는 모습과도 같이 낙엽들이 노오랗게 혹은 붉게 타오르고 있다. 낙엽은 졌지만 노인들의 가슴엔 아직 메마르지 않은 단풍이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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