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와 인품의 향기
마음의 향기와 인품의 향기
  • 소천 홍현옥 <시인>
  • 승인 2011.11.0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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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옛날에 아들 삼형제가 살았다. 첫째는 침착하고 성실하지만 다리를 절었고, 둘째는 호기심이 많고 건강했으며, 셋째는 경박하지만 날래고 용맹했다. 어느 날 둘째와 셋째가 산에 누가 먼저 오르는지 시합을 하기로 했는데 큰형도 오르겠다며 따라 나섰다. 셋째는, 자신의 날렵함만 믿고 계곡과 샛길을 돌아다니다 날이 저물어 버렸고, 둘째는, 봉우리와 절벽을 구경하며 오르다 중턱에서 날이 저물고 말았다. 첫째는, 자신이 다리를 절기 때문에 주변 경치를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쉬지 않고 정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날이 저물까 조바심을 냈다. 결국 정상에 올라 장대한 경관을 보고 왔다. 세 아들의 등산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가 이렇게 말을 했다. “자료의 용맹으로도 염구의 재주로도 끝내 공자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증자는 둔함에도 그 경지에 이르렀느니라. 너희들은 이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강희맹이 지은 ‘등산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 실력이 없는 사람이 가장 높은 곳에 이르는 듯하다. 실력이 없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둔하다고 할 수 있다.

둔한 사람이 왜 이길까? 세상은 영리함에 큰 가치를 둔다. 머리가 좋으면 돋보이고 빠르게 결과를 내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전진하지 않으려 한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니 불굴의 노력을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단순한 것을 끊임없이 하는 것. 그것을 이길 것은 아무도 없다. 낙숫물이 단단한 바위를 뚫듯 쉼 없는 움직임을 이겨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뛰어난 능력은 좋은 습관을 당해 낼 수 없다.

둔한 칼이 가장 열심히 일한다’는 말이 있듯이 둔하기 때문에 예리한 칼을 따라가려면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둔한 칼은 그래서 쉬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리한 칼이 꿈꾸지도 못한 곳에 이를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래전에 이병철 회장이 이렇게 말한 게 생각난다. 인재라면 둔한 맛이 있어야 한다고….

혹시 당신도 둔한 칼인가? 아마도 당신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날카로운 칼의 속도를 당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당신은 시간의 편에 서기만 하면 된다.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즘은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의식하게 된다. 젊었을 때는 조금 무리하게 운동을 해도 탈이 없었는데 지금은 조금만 무리해도 삐걱거리기 일쑤다. 그러면서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씁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더 젊게 살려면 이런 부정적인 것을 마음속에서 몰아내야 하는데, 누군가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고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심통을 부리지는 않는지 그러다 보면 나보다 어린 약자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대접 받으려 하고 마음이 편협해진다. 나이 들수록 열린 마음과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을 돌보며 아랫사람을 포용함으로써 나이 듦이 얼마나 멋진지를 보여주며 살았으면 좋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매일 ‘나의 일생’이라는 책을 한 페이지씩 써 나가는 것이다. 일생에 걸쳐 지속되는 한 페이지를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또 어떤 사람은 추하게 써 내려 간다. 희망의 노래가 흐를 때도 있고 절망의 노래를 읊조릴 때도 있다. 충실하게 써 내려 가다가도 너무나 많은 시간이 무성의해지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모여 ‘나의 일생’이라는 한 권의 책을 이룬다.

한 번 쓰인 인생의 책은 세상의 책과는 달리 지우거나 폐기할 수가 없다. 또한 인생의 책은 남이 대신 써 줄 수가 없다. 나의 책임, 나의 판단, 나의 노력으로 내가 써 나가야 한다. 모든 것을 나 혼자 외롭게 써 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의 책이다.

오늘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모여서 나의 일생이라는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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