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풍경(1)
설날 풍경(1)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1.10.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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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 베트남 생활기 -

베트남의 명절 중에서 가장 큰 명절이 설날입니다. 설날 전후로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됩니다. 특별히 쉬는 날이 없는 이 나라에서는 제일 긴 휴일의 시작입니다. 설날 앞뒤로 해서 열흘 정도는 기본으로 놉니다. 시장은 문을 닫고 가게도 닫고 식당도 닫고 문도 닫고 열려 있는 것이라고는 다 닫습니다. 닫힌 것은 또 닫습니다. 설날 전후로 베트남을 여행하려면 베트남의 전통 시장이나 식당 이용은 거의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그랬지요. 우리네 예전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는 베트남입니다.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축문 남무이’라는 새해 축하 인사와 함께 우리네 세뱃돈 개념의 돈을 건넵니다. 붉은 색 주머니나 봉투에 담아서 전하는 풍습은 아마도 중국에서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몇 날 며칠을 놀고 먹는 이때는 노름도 허락이 됩니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노름에 눈이 벌게지도록 들러붙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전문적인 노름꾼들이 바람을 잡는 것 같은데 여인네고, 아저씨고, 학생이고 눈에 불을 켜고 노름판을 떠나지 않습니다. 평소에 보기 어려운 고액권(50만동 - 3만원 정도)이 폴폴 날아다닙니다. 아주 오래전 우리에게 있었던 - ‘야바위’라고 하지요. 빨간 딱지를 골라내면 돈을 배로 받는 게임, 그러나 결코 빨간 딱지를 골라낼 수 없는 백전백패의 게임과도 같은 노름에 - 정신없이 돈을 걸다 보면 패가망신한 얼뱅이들만 억울하게 남고 사기꾼은 사라집니다.

전문적인 노름은 그들끼리 하고 골목길 서민들은 ‘빙고’ 게임을 합니다. 종이 빙고판을 놓고 번호가 적힌 골패를 꺼내서 숫자를 부릅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주로 합니다. 나도 낍니다. 아직 그들의 숫자에 익숙하지 못해서 내가 부르는 번호나 그들이 부르는 번호를 잘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버리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나 봅니다. 이삼천원만 가지면 두어 시간 깔깔거리고 놀고 옵니다. 내가 딴 돈을 구경하는 학생에게 주면 ‘깜언~’합니다. 외국인이 같이 어울리는 모습이 즐거운가 봅니다. 간다고 하면 붙잡습니다. 333 상표 맥주를 꺼내오고 쌀종이 튀긴 것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면 또 놉니다. 술이 떨어지면 이제 내가 술을 살 차례입니다.

밤이 깊습니다. 설날 연휴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시장 봐 온 것도 떨어져 가고 먹을 것도 없는데 슈퍼 문을 열려면 아직 멀었으니 베트남 명절에 물정 모르는 외국인은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다음날 아침 만만한 앞집을 괴롭힙니다. 슬쩍 가서 기웃거립니다. 들어오랍니다. 들어가서 그물 침대에 기웃거리며 앉아서 멀뚱거립니다. 그러다가 ‘분보 후에’ - 쌀국수의 일종인데 ‘후에’ 지방 방식의 쌀국수입니다 - 먹고 싶다고 합니다. 기다리랍니다. 집으로 후딱 들어와서 책 보다, 놀다 하고 있으면 부릅니다. 가정식으로 맛나게 만든 쌀국수와 또 다른 몇 가지 명절 음식을 가져 옵니다. 신났습니다. 이제야 나도 명절을 맞는 듯합니다. 명절에는 먹는 게 풍성해야 하니까요.

뜨거운 나라에서 맞이하는 설날 명절이 낯설지 않은 것은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이곳 사람들 때문입니다. 사람은 결코 물질만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깨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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