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
긍정의 힘
  • 이난영 <수필가>
  • 승인 2011.10.16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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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형제가 있었습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형은 거리의 걸인 신세를 면하지 못했지만 동생은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한 기자가 이들의 사정을 듣고 어떻게 똑같은 환경에서 이렇게 다른 인물이 나오게 되었는지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연구 끝에 기자는 특이한 액자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자란 집에는 ‘Dream is nowhere.(꿈은 어느 곳에도 없다)’라고 적힌 액자가 있었습니다. 기자는 형제에게 그 액자가 기억나느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있었죠. Dream is nowhere.(꿈은 어느 곳에도 없다.) 20년 넘게 우리 집에 있던 액자였죠. 전 늘 그것을 보며 자랐어요.”

인생에서 성공을 거둔 동생은 미소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있었죠. 하지만 저는 띄어쓰기를 달리 해서 보았죠. Dream is now here.(꿈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전 늘 그렇게 생각하며 자랐죠.”

같은 글을 가지고 20년이 넘게 형은 삶을 비관하며 살았는가 하면 동생은 긍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긍정적인 삶은 동생에게 꿈을 불어넣었고 동생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세계적인 보험회사를 설립한 클레멘톤 스톤은 집이 가난해서 12살 때부터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매일 “나는 건강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부유하다”고 외쳤고, 그의 말대로 건강하고 행복하고 부유하게 일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인생은 자신이 개척해 가는 것입니다. 그중에 만나는 행운의 기회도 거의 비슷하게 주어집니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기회도 더 많을 것이고, 준비하고 있을 때라야 그 행운도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하루 세 끼 때우는 것도 힘들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아들도 아닌 딸을 중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인근에 중학교가 없어 군 소재지 중학교에 입학하려면 자취나 하숙을 해야 했습니다. 학자금 마련도 어렵지만 자취나 하숙비가 더 문제였습니다. 그래 시골에서는 딸을 중학교에 보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았습니다. 당당히 합격했지만 입학금을 마련 못해 탈락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근에서는 처음으로 여자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음성 대소에서도 가장 오지의 시골에서 청주까지 유학을 했습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수업료 때문에 어머니에게 죄송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행복했습니다.

학교 졸업 후 공무원이 되었고, 이제 40여년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퇴직할 때가 되었습니다. 공직생활 하는 동안 가사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힘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보람된 기억만 가득합니다.

긍정의 힘은 시골 작은 마을의 소녀에게 충북도교육청 여성사무관 1호, 여성서기관 1호, 행정직 공무원 중에서 도교육청 여성과장 1호라는 명예를 주었습니다.

긍정적 생각을 품은 인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인생은 꼬이게 마련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밖에서 찾을 수 없고, 행복의 샘은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듯이, 모든 분들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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