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주는 마음
가을이 주는 마음
  • 소천 홍현옥 <시인>
  • 승인 2011.08.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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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아파트앞 정원에 목련 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하나는 백목련이고 또 하나는 자목련인데 어찌된 일인지 하얀꽃망울을 터트리고 보라는 듯이 자태를 뽐내고 피었다. 자목련도 뒤질세라 수십개의 꽃봉오리를 만들어 금방이라도 터트릴 기세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때인데 계절을 뛰어넘어 이 무슨 일인지 마냥 신기해서 핸드폰 카메라에 찍어 저장을 하고 돌아와 저녁에 가족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신기하다며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연방 들여다본다.

아직은 매미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뜨거운 여름날의 매미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바람의 향기가 여름과 다르고 푸른 물감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이 맑은 하늘이 전형적인 가을날씨다. 새벽엔 선선함마저 들어 창문을 닫아야 하니 계절의 변화에 자연의 위대함에 숙연함이 든다. 하늘이 너무도 푸르러 쪽박으로 한 번 떠 마시고 싶은 마음이다.

가을은 기다림의 계절이 아닌가? 한 다발의 꽃을 줄 사람이 있으면 기쁘겠고, 한 다발의 꽃을 받을 사람이 있으면 더욱 행복하리라. 혼자서는 왠지 쓸쓸하고, 사랑하며 성숙하는 계절이다. 여름내 태양의 정열을 받아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들, 복숭아향이 미각을 돋우는 계절, 호박꽃 속에 벌들이 자취를 감추니 고추잠자리가 두 팔 벌려 빙빙 돌며 님을 찾는다. 푸른 하늘 아래….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은 더욱 아름답고 가을은 옷깃을 여미는 질서와 신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봄날이나 여름날 한 잔의 커피 맛보다 낙엽지는 가을날 한 잔의 커피와 만남의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가을처럼 사람들을 깨끗하고 순수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계절도 없을 것이다.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가을은 혼자 있어도 멋이 있고 둘이 있으면 낭만이 있고, 시인에게는 고독 속에 한 편의 시와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젖다 보면, 다정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가을의 맑은 하늘에 무언가 그려 넣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이제 조금씩 벼이삭이 뻗어 영글어 가고 있지만 가을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들판으로 번지기 시작해 이 땅을 물들게 한다. 가을이 와서 바람이 되는 날, 가을이 와서 낙엽이 되는 날, 온 하늘이 푸른 바다가 되면 모든 사람들은 또 다른 계절로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떠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시인은 가을에 시를 쓸 것이고, 연인들은 사랑의 열매를 맺고, 사색가의 좋은 명상은 가을 하늘의 구름처럼 떠오를 것이다.

지난 여름날 엄청나게 쏟아졌던 비. 여름은 비 그 자체였다. 이 가을은 이 땅의 주인인 농부들,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들과 어려운 이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이 쏟아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무지개마저 잃어버린 도시의 하늘보다 황금들녘 땀 흘리는 농부들에게 이 가을이 풍요로웠으면 좋겠다. 이제 가을은 점점 깊어갈 것이다. 귀뚜라미는 울어대고 달빛은 차가움 속에 환하게 비출 것이고 별들은 옹기종기 모여 빛날 것이다. 이 가을에 고독이면서 의미있는, 외로움이면서도 그리움인 결실로 이어졌으면 좋으리라. 가을은 우리 마음에 무언가 주고 있으리라. 벌써 밤은 깊어가고 있다. 한 잔의 따스한 커피의 향내를 맡는데 잊어버린 고향 열차의 기적 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허수아비의 몸짓과 구멍뚤린 밀짚모자가 그리운 계절 가을을 이제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에 안고 아주 아름답게 이웃들과 나누며 보내야겠다.

가을! 이 가을은 사랑하고픈 계절이다. 사랑하고 있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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