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농사꾼
못난이 농사꾼
  • 반숙자 <수필가>
  • 승인 2011.08.10 1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숙자의 느낌이 있는 창
올여름은 어느 하루 �!� 날 없이 비가 내렸다. 여기저기서 고추가 죽고 병충해가 심하고 과일이 크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며칠 전 시골에서 고추농사를 많이 하는 친척동생을 만났는데 모두 죽어서 대체작물 없나 알아보려고 나왔다고 했다.

우리 집 채마밭도 예외는 아니다. 자급자족하는 농사라 손수 짓는 텃밭이 고작이다. 고추 모 한 판을 심었는데 청고추가 붉어서 주렁주렁하다. 죽지 않고 살아준 것만도 황공한데 홍고추라니 황공하여 날을 잡아서 수확하러 갔것다.

고추는 성한 것 없이 탄저병이 들어 있다. 그래도 땀 흘려 가꾼 것이라고 하나하나 골라서 환부를 도려냈다. 오이는 햇빛을 보지 못해 꼬부라지고 토마토는 달리기가 무섭게 제 성깔을 못 이겨 갈라져 버렸다. 가지는 못생겼어도 풍성하다.

며칠 만에 가는 날에는 이런 작물들을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파도 몇 뿌리 뽑고 키만 멀대같이 큰 상추 잎도 따고 수확적기를 놓쳐서 마디호박이 팔뚝호박이 된 것도 따 담는다. 그대로 두면 저놈 살찌우느라 애호박이 달리지 않는다.

따다가 마루에 벌여놓은 농작물이 마치 장날 난전에 앉은 노파의 좌판이다. 저걸 어쩐다? 마트에 가면 미끈한 농산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우리 것은 왜 저토록 못난이일까. 식구래야 노인 둘이니 먹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두면 더운 날씨에 금방 상할 것이 뻔한데...

이런 때 나는 외롭다. 구질구질한 농산물이라도 허물없이 먹어보라며 내밀 사람이 없다는 거, 모두 깨끗하고 세련된 거에 길이 들어 이런 것 주면 눈치도 없다며 슬그머니 쓰레기통에 던질지도 모르지 않는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배추 잎새 하나, 콩 한 톨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 함함하다듯이 거기 자신의 공력이 든 것도 사실이고 배추 자체로 볼 때도 생명을 키우느라 애썼기 때문이다.

사실은 농약 안 치고 풀약 안 치고 짓는 농사다. 풀을 뽑으면 흙에서 미끈미끈한 지렁이가 쏟아져 나오는 밭, 가끔 오는 우리 아이들조차 노인네가 기운도 없는데 풀약 한 번 주면 땡하고 끝나는 것을 미련하게 날이면 날마다 호미로 풀을 뽑는다고 지청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초제를 사 준다 소독약을 사온다 난리지만 아니다.

땅은 내가 숨쉬는 곳이다. 내 목숨 줄을 잡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훗날 나를 품어 쉬게 할 곳이다. 내가 빌려 쓰다 떠나면 내 후손이 이어 또 밭 갈고 씨 뿌려 먹을 곳이다. 사람이 겸손하고 부지런만 하면 먹을거리를 무한 보시하는 인자한 어머니다.

청산가리 2g은 두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지만 다이옥신 2g은 200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우리 농촌에서 사용하는 제초제에 포함된 독성물질이다. 잡초에 뿌리는 다이옥신이 잡초만 죽이는 게 아니고 흙 속에 있는 무수한 미생물까지도 죽여 버린다. 오염된 흙에서 자란 작물에 독성이 스며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못난이 농사꾼은 그래서 더 외롭다. 깨끗한 농산물만 찾는 이들이 농민들을 아프게 해서, 태풍 속에 낙과를 바라보는 농부의 허망한 눈빛이 아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