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동화 같은 풍광 탄성 절로
"아~!" 동화 같은 풍광 탄성 절로
  •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1.08.0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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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우뚝 솟은 고풍스러움… 성모성천교회

계단식 가옥 건물터… 과거속으로 손짓

한국의 정서를 물씬 풍기는 아르바나시 마을에 대한 연민을 뿌리치고 버스에 올랐다. 10여분 후에 우리는 벨리코투르노브에 도착했다. 이 벨리코투르노브의 옛이름은 투르노브, 불가리아 동북부에 위치, 도나우강 지류인 얀트라강 상류에 있으며 제2차 불가리아 왕국(1185-1396)의 수도였다고 한다. 아센 2세 때에는 슬라브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불가리아의 '아테네'라고 불렸다고 한다. 14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침입으로 멸망하였으나 1598년부터 재기하여 이후 500년간 문화 중심 지역으로 번창하였고, 19세기에 와서는 오스만투르크에 저항하는 무장봉기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파시즘 운동의 최대 거점 도시이기도 했다고 한다.

버스는 도심을 지나 고성(古城)이 자리한 차르베츠언덕 요새 앞 공동주차장에서 멈추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경관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중턱에 병풍처럼 둘러친 암산의 거대한 띠 모양의 흰 벽, 그 아래로 붉은 기와지붕에 흰 벽의 작은 집들, 협곡을 통과하면서 굽이쳐 흐르는 얀트라강이 숲으로 어우러져 있는 풍광이 기막히게 아름다운데, 눈을 돌려 앞을 보니 차르베츠 요새로 들어가는 돌길이 쭉 펼쳐지고 그 위로 성벽과 성채의 흔적이, 그리고 저 멀리 산꼭대기 위로 성모성천교회가 우뚝 솟아 어우러져 중세시대의 고풍스러운 풍광이 한눈에 잡혀 들어와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정말 탄성이 절로 나오는 감동적인 동화 같은 풍광이었다.

이 차르베츠 언덕은 원래 트라키아인과 로마인들의 정착지였다고 한다. 비잔틴 시대인 5세기와 7세기 사이에 이 언덕에 현재의 차르베츠 요새가 만들어 졌고, 8세기와 10세기 사이에 불가리아와 슬라브인들에 의해 재건축되어 요새화 되었다고 한다. 12세기 초 비잔틴 제국에 의해 다시 요새화되었고, 불가리아 제2왕정 때 최고의 부흥기를 맞이하였으나 1396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점령되어 파괴되었다고 한다. 현재 고고학자들은 이곳에 400개 이상의 주택, 18개의 교회, 여러 개의 수도원, 상점, 성문과 타워 등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고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얀트라강 위에 세워진 긴 돌다리로 걸어들어 갔다. 활과 창검만으로 전쟁을 했던 중세기 때엔 이 다리목만 잘 지키면 몇 십만 대군이 쳐들어와도 끄떡도 않을 난공불락의 견성(堅城)이었다. 이 출입구 다리를 지나야 고성에 들어갈 수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 같은 성이었다. 다리 입구에는 십자무늬의 방패를 든 돌사자상이 있었다. 돌 사자상을 지나 다리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두꺼운 송판으로 제작된 도개교(跳開橋)와 석문이 있었다. 유사시에 저 도개교 송판을 들어올리면 천 길 깊은 계곡 낭떠러지가 들어나면서 아무도 건너올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성채 앞에 이르자 삼면의 절벽 위엔 성인 가슴 높이로 석성을 쌓았고, 석성의 군데군데엔 3층 높이의 망루를 만들어 적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성채 안에 들어가니 성채 안 여러 건물들은 모두 석조물들이었으나 건물들은 모두 폐허 또는 잔해(殘骸)만 남은 상태였다. 정상에 있는 성모승천 교회를 찾아 오르는 길은 왼쪽으로 주 통로가 있었다. 오르는 길 이곳저곳에 허물어진 벽돌성채들, 대리석을 깐 멋진 바닥, 수도원 잔해들, 그리고 완전한 형태의 두 개의 말굽자석 모양의 종탑이 있었다. 하나의 종탑에는 작은 종이 3개 찼ㆎ이 있고 큰 종 하나는 따로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아래위 넓은 공간에는 계단식으로 지어졌던 많은 가옥들의 건물터가 주춧돌과 벽돌만을 남긴 채 버티고 있었다. 마치 오랜 과거 속으로 빠져들게 몸�!構� 있는 듯했다. 승모승천 교회로 올라가는 산비탈 길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땀을 흘리면서 돌계단을 따라 한참을 걸어 정상에 오르니 높은 건물의 성모승천 교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 성모승천 교회는 차르베츠 언덕에 있는 유물 중에서 1985년에 대대적인 보수를 완료한 덕택에 유일하게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많은 관광객들로 꽉 차 있었다. 제단 쪽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프로스코화가 빛나고 있었고, 사방 벽 전체가 큼직한 성화들로 메워져 있었다. 이 성화는 1396년부터 약 500년 동안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현대작가인 테오판 소케로브(Teofan Sokerov)가 그려 1985년 기증한 성화로 불가리아 현대 종교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성모승천 교회를 찬찬히 관람한 후 밖으로 나오니 저 아래 유물 잔해 꼭대기에 꽂혀 있는 불가리아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제2차 불가리아 왕국을 호령하던 옛 왕궁터라 한다. 영고성쇠(榮枯盛衰)가 불가리아 국기와 함께 한 줌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것 같아 슬프게 보였다.

이 고성을 한 바퀴 돌면서 아름다운 주위 경관을 감상하고 내려오니 거의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다시 도보로 유서 깊은 전통 공방 거리 관광에 나섰다. 공방 거리는 산비탈 오르막 골목에 형성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반들거리는 박석이 멋스럽게 깔린 고풍스러운 거리엔 2-3층짜리 집들이 늘어섰고, 대대로 기술을 물려받은 장인들이 그곳에서 만든 갖가지 전통공예품을 전시해 팔고 있었다. 목걸이, 귀걸이 등 장신구와 칼, 주전자 등 생활용구, 그리고 목공예품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기념품 티셔츠 등 의류점포도 간혹 눈에 띄었다. 상품 하나하나가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정성이 담긴 것이라고 느껴졌다.

어둠이 내리면 차레베츠 성에서는 색깔 레이저가 뿜어지면서 종소리와 구슬픈 불가리아 민속음악이 뒤섞인 '빛과 소리의 축제'가 유명하다고 하나 일정관계로 아쉬움을 남기면서 벨리코투르노브 관광을 끝내고, 오후 5시 30분경 소피아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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