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지붕·돌담길… 낯선 듯 익숙한
붉은 지붕·돌담길… 낯선 듯 익숙한
  •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1.07.2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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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⑩ 불가리아 전통 시골마을 아르바나시

◇ 끝없이 펼쳐진 농원… 반가운 개나리꽃

다양한 빛깔의 중세 문화유적이 깔려 있는 네세바르의 고전미 넘치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푸른 흑해바다의 시원한 바람의 기운을 느껴보면서 오전 10시 30분에 네세바르를 출발했다. 다음 행선지는 제2차 불가리아의 수도 벨리코투르노브라 한다. 그곳을 들르기 전에 벨리코투르노브 근처에 있는 불가리아 전통시골 마을인 아르바나시에 들러 현지식으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시골마을도 살펴보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까지 가는 데 무려 5시간이 소요된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대장정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일행 중 "어이쿠"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왔다. 여행이란 어차피 낯선 세상 속으로 잠겨들어 살펴봄이 아니던가. 끝없이 펼쳐지는 차창 밖 아름다운 이국 풍광에 내 자신을 던져 놓고 그와 함께 동행하는 즐거움이 여행의 또 다른 맛이려니 생각하면 괴로울 것도 없지 않겠는가.

버스는 흑해 해변의 아름다운 별장들이 산재해 있는 지역을 벗어나자 농원들이 끝없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특히 키 작은 포도밭 농장(아직 움트지 않은 포도 줄기가 외로워 보였다)이 한없이 전개되고 있었고, 간혹 길가에 노란 개나리꽃이 눈에 띄고 있었다. 새봄이 어느덧 소리 없이 이 낯선 이국의 땅에 찾아오고 있음이 아니던가. 올해 처음 보는 개나리꽃을 이국의 땅에서 보게 되니 그 감흥이 또한 남달랐다. 지금쯤 무심천변에도 개나리꽃이 한창일까.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무심천 개나리꽃이 머리에 떠오르고 청주가 어른거렸다.

◇ 평화로운 농촌마을의 아름다운 풍광

계속 달리는 버스 속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흐르는 음악위로 붉은 기와지붕의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소떼와 양떼들의 한가함이 스쳐가고, 웅장한 산과 그 위로 흐르는 구름이 스쳐갔다. 때때로 입담 좋은 가이드의 설명을 귀로 듣고, 아름다운 이국의 풍광에 감탄하면서 오다 보니 어느덧 5시간의 긴 시간도 다 흘러가고 있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붉은 기와지붕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담한 시골마을 큰 집 앞에서 버스는 멈추었다.

불가리아 전통마을 아르바나시의 식당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조경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넓고 아름다웠다. 식당 안도 밖의 아름다운 분위기와 어울리게 아담하면서도 운치가 있었다. 음식 맛도 배고픈 참이라 그런지 매우 맛있었다. 야채 셀러리 빵과 치즈를 듬뿍 얹은 토마토, 그리고 삶아 으깬 감자와 바비큐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한 후 아름답게 조경된 넓은 정원을 구경한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식당 바로 앞에 조그만 가게가 눈에 띄어 들어서니 좁은 가게 안에 미술작품, 각종 묵주, 엽서. 그리고 나무판에 그린 성화 작품들로 가득 찼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가게 주인은 화가인 듯 성화를 나무판에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자기가 그린 성화를 팔고 있다고 하였다.

계속 달리는 버스 속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흐르는 음악위로 붉은 기와지붕의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소떼와 양떼들의 한가함이 스쳐가고, 웅장한 산과 그 위로 흐르는 구름이 스쳐갔다. 때때로 입담 좋은 가이드의 설명을 귀로 듣고, 아름다운 이국의 풍광에 감탄하면서 오다 보니 어느덧 5시간의 긴 시간도 다 흘러가고 있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붉은 기와지붕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담한 시골마을 큰 집 앞에서 버스는 멈추었다. 불가리아 전통마을 아르바나시의 식당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조경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넓고 아름다웠다. 식당 안도 밖의 아름다운 분위기와 어울리게 아담하면서도 운치가 있었다. 음식 맛도 배고픈 참이라 그런지 매우 맛있었다. 야채 셀러리 빵과 치즈를 듬뿍 얹은 토마토, 그리고 삶아 으깬 감자와 바비큐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한 후 아름답게 조경된 넓은 정원을 구경한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식당 바로 앞에 조그만 가게가 눈에 띄어 들어서니 좁은 가게 안에 미술작품, 각종 묵주, 엽서. 그리고 나무판에 그린 성화 작품들로 가득 찼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가게 주인은 화가인 듯 성화를 나무판에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자기가 그린 성화를 팔고 있다고 하였다.



◇ 골목길·대문·기와지붕 한국 정서 물씬

가게 쇼핑을 끝낸 우리는 조용한 마을길을 따라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돌로 쌓은 돌담 위에 기와를 덮은 돌담, 그 돌담으로 늘어선 골목길에, 기와지붕 있는 송판 두 쪽 대문들, 그리고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옥 구조(돌담 안 넓은 마당에 단층집구조)를 살펴보면서 이곳 마을 정서가 우리나라 정서와 너무나도 흡사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하회마을의 어떤 골목길을 걷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을 할 만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이 마을의 집들은 모두 19세기 스타일인데, 현재 짓는 집들도 옛 스타일에 맞게 짓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통미를 보존하는 마을로 육성하는 시책 같은데, 내 눈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잘 보존되도록 하고 있는 시책같이 보임은 웬일일까.

문득 이화학술원 석좌교수인 신용하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 생각났다. 신 교수는 한국 민족 직계 조상 중 하나인 부여족의 일부가 유럽으로 대륙 이동하여 이곳 불가리아에서 불가리아 왕국을 건설하였다고 주장했다. 그의 '다시 보는 한국 역사' 논문 중 일부를 소개하면

"어떤 계기인지는 불명하나, 부여족의 일단이 4세기 말엽 서방으로 이동해 초원길을 거쳐 중앙아시아의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 '캅카스' 지방에 도착했다. 요동부터 카스피 해까지 이어지는 밝안산(백두산)~부여호~발칸산~발카시호~발칸산의 명칭 벨트가 부여족의 초원길 이동을 시사해 준다. 이 지방은 비잔틴 제국의 속지였다가 그에 앞서 이동해 온 동방민족인 아발(Avar·柔然)족의 영향 아래 있었다. 부여족은 5~7세기 초까지 돈 강 양안과 북캅카스에 흩어져 정착했다. 서양사에서는 이때부터 부여족이 불가(Bulghar)족으로 기록되어 나온다. '부여(불)의 가(加)' 족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돈 강 하류, 흑해 연안의 아발 세력이 약화되자, 635년 불가족 족장 쿠브라트(Kubrat)는 불가 부족연합을 결성해 아발 지배로부터 독립해 '대(大)불가리아(Magna Bulgaria)'를 건국했다.

-중략-

불가리아와 유럽 역사학자들은 현재 원(原)불가족(Proto Bulgar)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고 단념하고, 5세기 흑해지방 마그나 불가리아를 그 기원으로 삼아 역사를 쓴다. 필자는 바로 그 이전의 '원불가족'이 동방의 '부여족'임을 처음으로 밝히고 강조하는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 '부여족 후손' 신용하 교수 논문 떠올라

전회 불가리아를 소개할 때 다른 어떤 나라보다 조용하고 멋스러움이 넘치는 나라로 유럽에서 동방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나라 중 하나라고 했다. 나는 오늘 이 아르바나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유럽의 정서가 아닌 고즈넉한 한국 정서가 온몸을 휘감아 옴을 느끼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과연 부여족 후손들이 불가리아까지 진출하여 왕국을 세웠을까 하는 의문은 차치하고 너무나 한국적인 냄새가 나니 말이다.

더구나 불가리아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나는 민족이다'라고 하지 않는가. 어쨌거나 멀고먼 동유럽 불가리아 시골 전통 마을이라는 아르바나시에 와서 정겨움이 어둠속 햇살처럼 따뜻하게 번져 옴을 느끼면서 다시 한 번 신 교수의 역사 논문이 빛을 발하기를 염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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