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복지
사람을 살리는 복지
  • 박미영 <서부종합사회복지관장>
  • 승인 2011.07.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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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미영 <서부종합사회복지관장>

지루하게 계속된 장마로 마음까지 우울함이 가득해지는 듯하다. 축축함이 온 몸을 끈적이게 감싸면 감정 조절이 어려울 만큼 사람들의 기분을 휘두른다. 작은 일에 화를 내며 다툼이 일기도 하고 짜증스러운 말투와 몸짓이 더욱 서로의 마음을 할퀴게 되기도 한다.

폭우가 계속된 뒤라서 그랬을까. 유난히 파란 하늘이 그토록 반갑게 여겨지고 어여삐 보였던 것은... 그러나 그 반가움도 잠시, 더위가 무섭다는 표현이 쓰일 정도로 따가운 햇살과 폭염은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쉬이 지치게 했다. 이런 날씨 타령 가운데 장마처럼 우울하고 폭염처럼 따가운 또 하나의 소식이 가슴을 저리도록 아프게 했다.

얼마 전 청주에서 한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였다. 오랜 세월 연락이 끊어진 자녀의 소득이 드러나면서 수급자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후였다. 물론 가족 단절을 소명하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있을 수 있었지만 노인은 마지막 선택을 내렸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복지 수급자 자격 조사를 실시하면서 복지관에도 수급자 탈락 통보를 받았다며 다급히 달려오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이 이런 저런 사연으로 연락을 끊고 살아온 지 수십 년인데 갑자기 자녀의 소득을 이유로 수급이 탈락된다고 하니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실 자녀들 입장에서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녀가 부모를, 부모가 자녀를 그 오랜 세월 관계를 끊고 살기까지는 그들 나름 가슴에 품은 아픈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 조사는 결국 이들의 감춰둔 상처를 다시금 들춰내어 서로를 한 번 더 고통스럽게 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도 함께 가져왔다.

물론 복지 수혜자에 대한 소득 조사가 철저히 이루어지게 된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를 통해 부정 수급을 막고 복지 예산이 불필요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할 수 있으며 부양 의무자에 대한 부양 의무를 강화해야 함도 마땅하다. 그러나 실질적 부양 관계로 보기 어려운 사례들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행정적 구제 방법이 있으니 다시 절차를 밟아 신청하라는 말은 너무나 낯설고 두려운 일이 된다. 주변 복지 기관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노인들에게 그러한 행정 절차는 어쩌면 넘기 힘든 거대한 산처럼 여겨질 일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지원하고 대행할 수 있는 행정 체제가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전국적으로 이번 재조사를 통해 10만명에게 수급 탈락을 고지했다고 한다. 이들 중 독거 노인들이 한 달에 생계비로 지원받는 금액은 보통 40여 만원 안팎 수준이다(2011년 기준 최저 생계비는 1인 기준 53만2,583원, 현금 급여 기준은 1인 43만6,044원).

한 달 40여 만원으로 월세와 빠듯한 생활비, 의료비를 지출하면 한 달을 살아 내는 일이 거의 기적에 가깝다. 이 기적을 빼앗긴 이들의 선택이 ‘죽음’ 이었던 것은 마지막 순간의 절망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 알게 한다. 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복지이다. 따라서 최저생계비는 최소한의 인간의 생물학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책정되어야 한다.

복지 사각 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좀 더 융통성 있는 행정 절차와 민관의 절대적 신뢰 관계에 의한 연계 활동이 바탕이 되어 부정 수급은 막고, 요보호자는 더 철저히 끌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복지, 사람을 살리는 복지로 하루의 기적, 한 달의 기적이 이루어지고 그 기적이 쌓여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보장되고 희망이 되는 복지가 이루어져야 한다.

더 이상 이들이 삶의 기적을 빼앗기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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