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의 아침
성찬의 아침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1.06.2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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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반영호 <시인>

무엇인가가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곁에 없을 때서야 비로소 그의 빈자리를 느낀다.

우리가 당연한 듯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끼니마다 먹던 김치, 휴일 등 늘 내 곁에 있기에, 늘 접할 수 있었기에 아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라는 말이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늘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지내던 아내. 아내의 자리. 아들마저 취직을 하여 서울로 올라가고 나니 혼자다. 퇴근하여 집 안에 들어설 때면 썰렁한 마음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여자들이 하는 집안일이라는 게 해도 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이것을 정리하고 나면 저것이 눈에 보이고 저것을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게 튀어나온다. 자질구레한 일이 계속 이어진다. 먹지 않고 나다니지도 않는다면 모르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런가?

무엇보다도 궁한 게 먹는 일이다. 빨래하고 청소하는 건 대충 넘어갈 수도 있다. 빨래는 세탁기에 넣으면 알아서 빨고 헹구고 탈수까지 자동처리된다. 청소 또한 청소기를 끌고 다니기만 하면 기계가 척척 쓸고 닦아준다. 문제는 밥 짓는 것과 반찬 만드는 것이다. 요리는 꿈도 못 꾸고, 그 흔한 된장이며 국 끓이는 일도 여간 아니다. 만만한 게 라면이다.

그날 아침도 라면이었다. 좀 맛나게 끓인답시고 계란을 두 개나 깨 넣고 묵은 김치와 파를 송송 썰어 넣었다. 매콤한 자극성 음식을 좋아하므로 고춧가루도 한 숟가락 퍼 넣었더니 제법 맛이 난다. 라면도 첨가물을 넣으면 한결 색다른 맛이 난다는 걸 알았다.

뜨거운 라면을 한 냄비 해치우고 날 즈음 초인종이 울렸다. 글 쓰는 친구 권 시인이다. B선생님이 보내셨다며 보자기로 싼 보따리를 두 개나 건네주었다. 풀어보니 락앤락과 글라스락이 여러 개 들어 있다. 거기에는 김치, 취나물, 마늘장아찌, 멸치볶음, 상추, 양념장, 잡곡밥이 정성스레 들어 있었다. 시집간 딸에게 친정어머니는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 보낸다 하였던가? 맛깔스러운 반찬들을 보니 라면을 두 봉이나 끓여 먹었지만 식탐 많은 나는 군침이 돌았다.

얼마 만의 성찬인지. 찬합 가득한 현미 잡곡밥은 기가 막히다. 쌈장은 흔히 먹던 구매용이 아닌 토종된장에 양념을 하였고, 멸치볶음에는 호두, 해바라기씨, 잣, 콩이 들어 있어 아주 특별한 맛이 난다. 물컹한 군둥내 나는 묵은 김치만 먹다가 성찬 앞에서 밥 한 공기를 후딱 비웠다. 밥 한 숟가락에 반찬은 요것 저것 골고루 집어 먹었다.

요즈음 마트에 가면 없는 게 없이 간편하고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식품들이 많다고 했다. 밑반찬은 물론이고 찌개까지도 가공되어 있단다. 또 햇반이라는 게 있어서 데우기만 하면 금방 한 밥과 같다며 자식이 전자레인지를 사 왔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한데 아직 한 번도 전자레인지를 사용해보지 못했다. 마트에 가서 그런 것들을 살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난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며 울컥 목이 메인다. 열 공기는 담겨 있을 듯한 찬합에서 한 공기 덜어 퍼놓은 밥을 다 먹고도 숟가락을 놓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반찬만 연방 집어먹고 있다.

언제나 퇴원하게 될는지 기약 없는 아내다.

이 아침. 무엇이 이토록 목울대를 뻐근하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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