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매력 가득한 곳, 베트남(55)
낯설지만 매력 가득한 곳, 베트남(55)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1.06.0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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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하루 종일 하는 결혼식 풍경(6)

신랑 신부의 등장에 이어 양가의 부모가 등장하여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곧 거대한 5단 케이크가 나타나고, 자르고, 찼ㆎ이로 잔을 세워 놓은 곳에 샴페인을 따르며 호사의 극치를 부립니다.

축포가 터지고 꽃가루가 날고 동남아 순회 공연을 막 갔다 왔다나 뭐랬다나 하는 사회 보는 아줌마는 어쩌거나 말거나 유명하고, 바쁘고, 다들 건배가 난무하고 서서히 잔치판 난리가 법석으로 치닫습니다.

식을 보느라 테이블 상황을 잊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오늘 나올 음식 메뉴가 적혀 있습니다. 웨이터들이 음료수는 미리 놓았고, 코스에 맞춰 음식이 나옵니다. 원앙장식을 한 닭요리, 아기 팔뚝만한 새우 요리. 토끼만한 새끼돼지구이, 연어만한 생선 조림, 잘게 다진 소고기 볶음 요리, 갓난쟁이 허벅지만한 바닷가재 등등의 음식들이 시차를 두고 나오고 웨이터들은 곳곳을 누비며 맥주를 따르고 - 잔이 빌 틈이 없습니다.

절대로 잔이 비어지는 순간은 없습니다 - 무대 위에는 동남아 공연을 갔다 왔는지 말았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아줌마 사회자가 노래를 불러대고, 흥이 돋은 손님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무대 앞에서는 흥이 난 친척, 인척, 사돈, 팔촌, 어중이떠중이가 춤을 추고 블루스를 추고 개다리춤을 추고, 이놈이 저년 잡고, 저년이 이놈 끌고 난리가 아닙니다.

평소에 얌전하던 신랑도 이제 흥이 났습니다. 마이크를 독차지하고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괙괙거립니다. 이 와중에 또 하객들 사이를 다니며 건배를 외치는 신랑 측 부모는 연상 취해갑니다.

정해진 식이 끝나고, 정해진 음식을 다 먹어가자 서서히 결혼식이 끝나갑니다. 마지막으로 신나는 음악 한 곡 더 부르고 춤 한 판 더 때리고, 이제 그만 끝을 내자고 '올드랭 사인'인가 하는 음악이 연주됩니다.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만 하객들은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합니다. 신랑의 어머니가 문 앞에서 일일이 인사하고 포옹하고, 뽀뽀하며 침 튀어가며, 침 묻혀가며, '사랑한데이~감사하데이~'를 낱낱의 하객들에게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간신히 빠져 나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자정 가까이 되어 갑니다. 다들 파김치가 됐습니다. 그렇게 준비도 오래 걸렸고, 하루 종일 땡볕에서 한 결혼식이 끝이 났습니다. 다들 파김치가 되고, 시든 고들빼기 김치가 됐습니다. 이렇게 종일을 하는 베트남 결혼식 풍경이 끝났습니다.

있는 집은 이렇게 호사롭게 하고 조금 못사는 집은 1부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돈이 없으면 결혼하기 어려운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요즘 한국으로 오는 베트남 처자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남자 쪽에서 거의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는 베트남의 풍습을 따른다면 우리는 그네들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낯선 곳으로 시집을 와서 고생스럽게 사는 그네들의 소식이 가끔 방송에 나올 때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어렵게 살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를 잊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올챙이 시절을 갖지 않은 개구리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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