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의 조화
엇박자의 조화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1.05.3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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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반영호 <시인>

구름처럼 모여든 수천의 관중. 그 가운데에서 신들린 사람처럼 온몸을 불사르는 사람들. 36년간 일제의 핍박 속에서 어렵고 힘들었던 삶을 풍자와 해학으로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며 한많은 인생을 살다간 각설이를 재현하고 있다.

그 흔한 꽹과리. 북. 징. 장구가 아니다. 그들이 두들기는 것은 찌그러진 깡통. 대야. 주전자. 함지박. 대나무. 생수통. 드럼통 등 폐품들이다. 제대로 소리가 날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 소리에 매료되어 넋이 나간 관객들은 숨을 죽여 관람하는가 하면, 괴성을 지르고 어깨춤을 들썩이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인가 싶으면 전혀 듣지 못했던 색다른 음색. 음성품바축제 때 열림식 공연으로 올린 폐품난타다.

어떤 행사를 시작할 땐 개막식을 한다. 여기에선 순수한 우리말 열림식이라 했다. 물론 폐막식도 닫음식이라 했다. 보통 개막식에선 각 단체의 대표나 장들이 나와서 거창한 말로 축하와 위로의 말을 장구하게 늘어놓지만 품바축제의 열림식에는 한마디 덕담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단체의 장이 아닌 악수맨, 소위 방귀뀌는 사람들이 아니다. 소외받는 노인이나 장애인, 어린이, 봉사자들이다.

또 이번 열림식에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일본에서 온 아키히란 여성이 한국에 왔다가 축제의 의미를 알고 일제의 침략을 참회하는 말을 열림식에서 토로했다. 비록 일본이 두 번씩이나 우리나라를 참탈했지만 지난 일본지진 때 성금 등을 보내 도와준 한국에 고마움도 표했다.

이렇게 진행된 프로그램에는 난타들이 그 분위기를 조화롭게 뒷받침했다. 덕담에 참여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장단에 맞추어 무대로 이끌어 올리고 덕담이 끝나면 함께 난타를 치며 어우러지는 것이다.

난타는 말 그대로 난타다. 생활용품으로 쓰이다 버린 폐품들을 이용해 신나게 두들기는 게 난타다. 드럼통 같은 종류는 크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가 하면 냄비 뚜껑이나 주발 등은 작고 낮은 소리를 낸다. 이것들이 동시에 치면 작은 소리는 큰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큰 소리는 작은 소리의 틈을 이용해 쳐야 한다. 보통 통일성을 주장하지만 통일성보다는 조화로움이다.

우리 사는 사회도 그렇다. 힘 있고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만이 사는 사회가 아니다. 어렵고 힘들고 나약한 사람들도 이 사회의 일원이다. 서로 어우러져 다함께 모여 사는 사회. 콩 한 말에 조를 넣으면 무게는 늘어도 부피는 별로 늘지 않는다. 콩 사이사이에 작은 좁쌀이 끼어 어울리는 것이다.

폐품난타는 각설이 축제에 어울리는 공연이다. 지금은 찾아보려야 없지만 그 옛날 거지들이 깡통 같은 용기를 들고 얻어먹던 동냥 그릇들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찬밥이라도 한술 주쇼' 하며 깡통을 두들겨 장단을 치며 동네를 돌았다. 어쩌다 상갓집이나 잔칫집을 만나면 각설이들은 신명이 났다. 신나게 놀아주고 맛난 음식을 얻어먹었던 것이다.

이들이 폐품 난타를 공연해 모금한 돈은 유니세프기금으로 UN에 전달하게 된다.

이 얼마나 뜻있는 공연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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