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규율보다 못한…
반상의 규율보다 못한…
  • 김기연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외협력부장>
  • 승인 2011.04.1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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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김기연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외협력부장>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아버지의 명예회복과 넋을 달래기 위한 정조의 선택. 화성 축성. 외규장각 도서 중의 한 권인 화성성역의궤>엔 2년간의 축성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화성 축성에 25만냥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실제 소요된 비용은 87만냥. 예상보다 3배 이상의 비용이 투입됐다. 당시 집 한 채를 짓는 비용은 15냥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지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경비는 국가 재정이 아닌 왕실 재정으로 충당했다. 사도세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화성 축성이 영조의 결정에 대한 반기가 아닌, 순수한 '효심'의 발로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조처였다. 눈에 띄는 건 인부에 대한 노동정책. 왕조시대의 소위 '국책공사'는 백성을 강제동원하는 부역이 일반적 방식이다. 정조는 신하들의 반대에도 백성을 강제동원하는 '부역'을 선택하지 않았다. 목수, 미장이, 조각장 등 전문 인력을 제외하고는 '부역' 대신 '사역'으로 인부를 모집했다.

당시 왕조나 지방관청의 공사에 참여한 백성은 강제동원에다 임금도 지급받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렸다. 탐관오리들의 중간 갈취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백성의 노동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한편, 제때 제때 임금을 지급했다. 공사에 참여한 인부의 인적사항은 물론, 종사업무, 노동일수 등을 기록했다. 주간에 노동시간도 하루 단위 기록이 아닌 반나절 단위로 기록하면서 정확도를 높였다. 예를 들자면 수원에 사는 홍길동이 돌 나르기 작업을 열흘 동안 오전에 3시간, 오후에 5시간 일했다는 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공사에 투입된 인원은 70만명. 일반 백성은 하루 품삯으로 2전 5푼을, 목수, 미장이, 조각장은 4전 2푼을 지급했다. 화성 축성에 동원된 장인들은 1821명으로, 연인원 311만 1131명이 공사에 참여했다.

백성의 노고를 위로하는 마음씀도 남달랐다. 수시로 상품을 지급하고 잔치도 열어줬다. 한여름 땡볕 아래 일할 백성의 건강 보호를 위해 '척서단'이라는 약제를 직접 지어 내려주기도 했다.

신분제가 사라졌다는 오늘날. 청주지역 2개 택시 회사는 3개월째 채 100만원도 안 되는 임금조차 지급받지 못했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레미콘 차량을 운전하던 32명의 노동자는 재계약 서류에 도장 찍는 날, 회사는 '120만원짜리 정수기' 구매를 '권유'한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권유'란 '강매'의 순화된 표현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정수기를 떠안는 불이익에도 '밥줄'을 위해 일해 왔다. 5년간 동결된 임금. 치솟는 물가에 천원의 임금을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답변. 계약해지. 거리로 나앉은 그들은 지금 복직을 촉구하며 천막살이를 하고 있다.

"양반사회라고 해서 차별사회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자료를 보면 상당히 평등사회였던 점을 보여준다." 이화여대 한영우 교수의 분석이다. 100년 뒤 또 다른 한영우 교수는 2011년을 사는 노동자들의 기록을 어떻게 분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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