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우리 농촌의 관행이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논밭두렁 태우기다. 관계 당국이 애원하다시피 하지 말라고 당부와 홍보를 해도 봄철 논밭태우기는 줄기차게 이뤄지고 있다.
공무원들이 비상근무를 하고 산불감시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해도 소용없다. 숨바꼭질하듯 이곳 저곳서 연기가 난다. 마치 논밭두렁을 태우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기라도 하는 양 고집스럽게 태운다.
고정관념 때문이다. 일년 농사의 시작은 논밭두렁을 태우는 일이요, 또 그래야만 병해충이 사라져 한 해 농사가 풍년 든다고 믿어 왔다. 그러니 하지 말라고 해도 굳이 하고 마는 게 농심이다.
해서 농촌진흥청이 연구에 나섰다. 오래전 일이다. 연구 결과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는 결론을 얻었다.
애멸구 같은 해충은 겨우 11% 정도만 제거되는 반면 거미처럼 농사에 도움을 주는 익충은 89%나 제거돼 농사에 불리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를 믿지 못하는 듯 여전히 논밭두렁에다 불을 지른다. 그뿐 아니다. 고춧대나 폐비닐 같은 농산폐기물도 죄다 끌어다 함께 태운다.
상황이 이러니 매년 이맘때가 되면 관계공무원과 산불감시원들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논밭에서 연기가 나는 만큼 그들의 속도 덩달아 탄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전체 산불의 30%(지역에 따라서는 이보다 훨씬 많음)가 논밭두렁을 태우다 번진 것으로 나타나 있고 최근 10년간 논밭두렁을 태우다 숨진 사람도 60명이 넘으니, 속 타는 건 당연지사다.
산간 농지가 많은 지역, 특히 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이 지나가는 각 지역 공무원과 산불감시원들은 매년 봄철이 두려울 정도로 논밭두렁 태우는 일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다.
이들은 비 온다는 예보를 더 더욱 싫어한다.
비만 온다고 하면 농민들이 작정하고 나서서 논밭두렁과 농산폐기물을 태우려 하기 때문이다. 비 오기 전날 저녁과 밤중은 특히 심하다.
다들 쉬쉬해서 그렇지 올봄 들어서도 크고 작은 산불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괴산, 음성, 단양, 제천 등 충북 북부지역만 해도 벌써 수십 건에 이른단다. 산불감시원들에 의하면 대부분 논밭두렁과 농산폐기물을 태우다 산으로 번진 불이란다. 지난 1일 발생해 3의 산림을 태우고 16시간 만에 진화된 월악산 국립공원 산불도 밭두렁에서 농산폐기물을 태우다 옮겨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밭두렁은 예전부터 '소통의 구간'이었다. 사람들은 논밭두렁을 통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했고 짐승들 역시 사람 발자국을 따라 논밭두렁을 오고 갔다. 인간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구분 짓는 역할도 했지만 한편으론 양쪽 영역을 연결시켜 주는 소통로 역할도 해 왔다. 산과 들에서 옮겨온 곤충과 식물 등 생명체들이 인간의 영역인 농경지를 바라보며 나름대로 생태계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곳이 곧 논밭두렁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마저도 용인하지 않았다. 왜 남의 밥상을 자꾸만 넘보냐는 식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논밭두렁 태우기요,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제초제와 살충제, 살균제 등 각종 농약을 뿌려대고 있다.
오늘은 식목일이다. 기후 온난화로 나무 심는 시기가 점차 앞당겨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전후해 나무를 심고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일년 중 산불이 가장 많이 나는 시기가 나무 심는 기간이다. 식목일에다 청명, 한식이 겹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서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정도의 불씨쯤이야" 하는 부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열심히 나무를 심고, 다른 한쪽에선 열심히 태워대고. 그릇된 관행과 부주의가 여전한 현실, 이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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