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만 해선 안된다
울기만 해선 안된다
  • 김기연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외협력부장>
  • 승인 2011.03.0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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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김기연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외협력부장>

돌연사. 그는 유언조차 남길 틈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나기 전날. 고향 친구와 만난 저녁 자리에서 건넨 말이 유언 아닌 유언이 되고 말았다. "작은 아이의 고등학교 입학 전에는 꼭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

2009년. 쌍용자동차는 2646명의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한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옥쇄파업을 벌였다. 사측과 정부는 '사회적 살인'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애착'을 테러로 간주했다. 스티로폼을 녹일 정도로 강력한 화학물질과 발암물질이 함유된 최루액을 무차별 살포해 노동자들의 피부가 벗겨지고, 수포가 부풀었다. '준살상용'으로 테러범에게나 사용하는 '테이저 건'을 진압장비로 사용했다. 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진의 출입도 제한됐다.

'적성국가'에게나 사용했던 '심리전'도 동원됐다. 속칭 삐라라 불리는 '투항 권유 전단지'는 헬리콥터의 거센 날개바람을 타고 공장 안으로 침투했다. 밤이면 노동자들의 수면방해와 투항을 유도하기 위해 고성능 확성기로 '부모님'과 '고향'에 대한 음악을 틀어댔다.

그렇게 77일이 흐른 8월 6일. 참여자 중 52%는 정리해고, 48%는 1년 무급휴직 후 순환 복직에 합의했다.

77일간 옥쇄파업에 함께했던 그는 48%, 462명에 해당하는 무급 휴직자 중의 한 명이다. '쌍용자동차 직원'이기에 실업수당은 고사하고, 복수취업 금지 규정에 의해 취업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 등록금 생각만 하면 가슴이 숯덩이가 될'정도로 빈곤의 세월이 이어졌다. 그 세월을 차마 감내하지 못했던 그의 아내는 작년 4월 아파트 10층 난간에서 하늘로 몸을 던졌다. 그럼에도 2010년 8월 6일이면 근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날품팔이로 하루하루 버텨왔다.

복직 예정일인 8월 6일. 쌍용자동차는 '복직계획은 없다'며 무급휴직자들의 복직을 거부했다.

그는 복직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지난 2월 26일 생명의 끈은 놓고 말았다. 고등학교 1학년 아들과 중학교 2학년 딸에게 4만원의 통장잔액과 150만원의 카드빚을 유산으로 남겨 둔 채. 회사는 그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의 끈마저도 잘라버렸다. 노동자는 '경쟁의 수레바퀴에서 이윤을 남길 때만 의미있는 나사못'일 뿐이다. 그의 노제가 있던 28일. 회사는 정문을 걸어 잠그고 상여출입을 막았다. 44살 임무창씨는 회사가 아닌, 흙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임씨가 흙에 묻히던 날, 쌍용자동차 창원공장에서 근무하다 2009년 희망퇴직한 37세 조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에 연탄을 피워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정리해고 발표 이후 14명이 사망했다. 이 중 8명은 연탄불을 피우고, 목을 매고, 투신해서 죽었다. 6명은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 뇌출혈로 명을 달리했다.

임씨가 죽기 얼마전인 2월 22일, 쌍용차는 신차 코란도-C 발표회를 열고 재도약을 선언했다.

"이제 우리는 안다. 다만, 울기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임씨의 노제에서 송경동 시인이 임씨에게, 오열하는 그의 유족에게, 그리고 살아 남은 이들에게 건넨 추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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