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단지를 걸면 삶이고,배낭을 메면 여행이다
솥단지를 걸면 삶이고,배낭을 메면 여행이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2.2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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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매력 가득한 곳, 베트남(42)

윤승범의 지구촌풍경

베트남 공항은 딱딱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명목을 유지하는 나라라서 그런지 세관원이나 검색대 직원의 표정은 무표정합니다. 한 치의 융통성도, 유쾌한 농담도 통하지 않습니다.

조심스러운 고양이처럼 검색대를 거쳐 공항 밖으로 나옵니다. 공항에는 열렬한 환영 인파들이 몰려 있습니다. 낯선 여행자인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나라 베트남 처자들이 돈 많은 나라() 한국의 사내와 결혼해서 잠깐 귀국을 환영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다리는 가족들은 꽃다발을 들었고 온 가족이 나와서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처자들은 두툼한 옷을 벗지 않았고 '메이드 인 코리아' 상표의 물건을 바리바리 옮깁니다. 서로 포옹하고 웃으며 맞는 그들의 행복해 보이는 풍경 사이에서 우리나라에서도 겪었던 옛 슬픔을 읽습니다.

출국대에서는 반대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한국으로 시집을 가는 처자들이 줄을 섰고 그들을 배웅하는 일가 친척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겨우 두어 번 얼굴을 본 낯선 남편을 만나러 가는 처자들의 표정은 굳었습니다. 그들이 싸가는 짐 속에는 고국의 그리움을 달랠 물건들이 가득 찼습니다. 검색대에서 퇴짜를 맞아 풀려진 보따리에는 별의별 것이 다 들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는 과자, 어포, 늑맘(베트남 액젓류), 쌀국수, 베트남식 라면 등등이 가득 나옵니다. 일가 친척이 싸 주었겠지요. 떠나는 이들에게 보내는 아쉬움이 가득 담겼습니다. 그것들을 덜어내면서 처자들은 또 한 번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의 눈물이 호치민 공항에 가득차서 공항 주변의 나무들은 무럭무럭 잘 자랍니다.

여행이라는 것과 산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여행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삶에서의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힘이 들고 어렵기도 하겠지만 곧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그래서 여장을 풀면 또다른 안식이 있다는 점에서 유쾌합니다.

가기 싫으면 언제든 안 가도 됩니다. 모든 선택의 자유는 내게 있습니다. 반면에 산다는 것은 버거움입니다.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하고,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무거운 형틀입니다. 지겹다고 놓을 수 없고 즐거움이 내내 계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삶과 여행의 다른 점입니다. 삶이 여행과 같다면 얼마나 즐거울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요. 그 버거운 삶 때문에 인생에 희노애락애오욕이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어디론가 자꾸 떠나는 여행은 잠시 접고 이제 이 더운 나라에서 이 년 동안의 생활을 계획 합니다.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 이 나라에서 사는 동안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생각을 합니다. 베트남의 육성조(六聲調) 눈물 소리를 들으면서 공항을 빠져 나옵니다.

호텔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살 집을 구해야 합니다. 하룻밤 묵을 곳이 아니라 솥단지를 걸고 밥을 해 먹을 수 있어야 하는 집을 찾아야 합니다. 솥단지를 걸면 삶이고 배낭을 메면 여행입니다. 삶과 여행 사이. 그 사이에 서 있습니다.

낯선 베트남에서의 분잡한 오토바이 때문에 길을 건너지 못하고 오도카니 서 있는 이국의 사내가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그게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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