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녀와 그의 목소리에…
제발 그녀와 그의 목소리에…
  • 김기연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외협력부장>
  • 승인 2011.02.22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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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김기연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외협력부장>

순간, 예리하게 벼려진 칼날이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 자리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홉 살 딸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서럽게 울고 또 울었을 그가 떠올랐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딸아이의 편지엔 '운동회와 학예회를 함께 가자.'며 그를 보챘다. 그는 편지글을 읽으며 딸과 맺은 철썩같은 약속을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뒷굽에 바퀴가 달린 '휠리스' 운동화를 사주겠다는 그 약속이.

"아빠, 내가 일자리 구해 줄 테니까 그 일 그만하면 안 돼." 아빠가 보고픈 마음을 한껏 담은 투정어린 글귀가 그를 흔들었다. 그가 짊어져야 했던 무거운 짐. 세 아이의 아빠. 그리고, 650명의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조합의 대표자.

단절된 공간. 그곳에서 그는 절규하고 분노했지만, 거친 파도소리에 묻힐 뿐 세상은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울다 지쳐 그가 선택한 수단. 내 목숨을 바치니 우리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라. 그는 고공 35m, 85호 크레인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8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심장의 울림이 그 자리였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바로 그곳. 한진중공업 노조 대표자 김주익 열사가 2003년 129일간 홀로 농성하다 목을 맨 바로 그곳. 그곳에서 그녀는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 하면서도 벌써 48일째 나홀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의 바람은 그의 바람과 다르지 않다. 불나방처럼 크레인에 기어오른 그녀는 그가 원했던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소금꽃>을 피우고 있다. 쉰두 살의 그녀는 김진숙의 절규.

'사람이 죽고 나서야 맺은 고용안정 협약이 왜 휴지조각이 되는가? 대체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가 파리목숨같이 크레인으로 오르는 불나방이 돼야만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를 중단하는가? 고용안정 협약을 준수하는가'

그는 지금 수배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현재 집행유예 기간 중이다. 지난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1년 6월 판결을 선고받았다. 몸을 사리고 또 사려야 할 그가 기꺼이 노조 부대표의 짐을 짊어졌다.

그는 사내하청 노동자다. 하지만, 법원은 그가 '정규직 노동자'라 확인시켜 주었다. 법원은 그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불법파견인 데다 2년 이상 고용했으므로 현대자동차 직접고용 대상'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해고자 신분이다. 현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어야 할 그는 현대자동차에 출입할 수 없다. 현대자동차가 법원에 신청한 '출입금지 가처분'을 인가 받았기 때문이다. 판결 이행을 촉구한 파업으로 수배령도 떨어졌다.

이번에 검거돼 세 번째 '별'을 달더라도 '같은 공장, 동일한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 자신의 판결이 적용되길 바라며 현대자동차와 맞서고 있다.

수배 중이던 지난 7일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으로 선출된 서른다섯의 최병승 씨가 토해낸 울분.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피해자가 수배당하는 이게 정상사회인가? 정말 비통하다. 법원이 불법으로 판정한 자기 잘못에 대해 현대자동차는 왜 반성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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